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 박성욱
  • 승인 2016.08.1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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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던 동네> 

 내가 살던 마을 이름은 현암이다. 검을 현(玄) 바위 암(巖) 자를 쓴다. 마을 어른들은 검은 바우라는 친숙한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셨다.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이 동네 저 동네 밤이고 낮이고 싸돌아다니면서 놀았다. 어느 날인가 동네 뒷산에 활 만들려고 대나무를 베러 갔다. 내가 쓸 장난감 활과 화살을 만드는 데 대나무 하나 조릿대 몇 개면 충분했다. 계단 같이 일궈진 밭을 지나 산 초입에 들어서면 대나무 군락이 있었다. 거기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베어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좀 더 깊이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뭉뚝한 나무 지팡이 하나 들고 탁탁 풀숲을 헤치면서 걸어갔다. 아 그런데 조금 걷자 눈앞에 커다란 검은 바위가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우리들이 아니었다. 고목나무 매미처럼 검은 바위에 딱 달라붙었다가 경사가 급하지 않고 중간 중간 바위 틈새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슬금슬금 기어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엉덩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곳에 다다르자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걸터앉아 눈 아래 펼쳐지는 마을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로 그 바위 때문에 마을 이름이 검은 바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구이초로 발령 나고 며칠이 지났다. 퇴근 후 학교 주변 동네를 돌았다. 냇가, 저수지, 앞산 뒷산 우리 아이들하고 놀 곳이 없을까 찾기 위해서였다. 어릴 적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집 저집 이 골목 저 골목 논두렁 길 밭두렁 길 여기저기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다.

  하기야 요즘 시골 마을에 아이들이 귀하게 된 일은 최근 일이 아니다. 내 고향 마을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들락날락 한다. 동네방네 쓸고 다니면서 온갖 말짓 다 하고 다니던 개구쟁이들 낭만은 이미 추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구이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마을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원생활을 찾아 도시에서 이사 온 친구들이 많아서 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네 아이들이 없다. 아니 이게 무슨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렇다.

아이들은 정규 학교 공부가 끝나면 학교 방과 후, 학원 가느라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 동네 어르신 만나서 “안녕하세요.” 인사할 기회도 별로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아이는 많은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도움 등을 받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작은 가정 울타리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안전하지 않고 쉼을 허락하지 않는 위험하고 욕심 많은 세상으로 만든 어른들 책임이 크다.

  학교 주변 동네를 돌면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제법 수확이 있었다. 모악산 둘레길도 발견하고 대나무 숲도 발견했다. 괴상하게 생긴 바위도 발견했다. 이거면 충분하다.

 <애들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우리 학교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특히 4학년 아이들은 넘치다 못해 폭발한다. 이 녀석들 데리고 동네 마실을 갔다. 저번에 봐 두었던 대나무도 몇 개 베러 갔다. 대나무 밭주인에게는 미리 허락을 받았다. 수소문한 결과 학교 운영위원장님 소유였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몽땅 베어다 쓰란다. 야호!

  아이들은 자기 키 보다 일곱 여덟 배는 됨직한 대나무를 먼저 자기 것이라고 찜하고 땀을 펄펄 흘리면서 톱질을 했다. 처음에는 쉽게 잘라질 것 같다가 거의 베이질 쯤 대나무가 마지막 발악을 해서인지 톱질이 잘 안 됐다. 한 친구가 대나무를 한 쪽으로 밀어서 눕혀주고 나서야 쉽게 대나무를 벨 수 있었다. 빽빽한 대나무 숲에서 자른 대나무를 빼서 산비탈 길에 차례로 벌려 놓았다. 이 기다란 대나무를 조그마한 아이들이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아이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둘이서 대나무를 끌고 갔다. 대나무 이파리에 동네 골목길이 쓱쓱 쓸렸다. 깨끗하게 빗자루 질을 한 것 같았다. 동네 한 바퀴 청소가 자동이었다. 이 대나무로 무엇을 했을까? 대나무 집을 지었다. 대나무 집을 짓게 된 일을 다음 편에 이어 쓰기로 하겠다.

 

 

 박성욱 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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