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백제역사유적
부여 백제역사유적
  • 한성천 기자
  • 승인 2016.07.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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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부성 名品만들기 - 2

 2015년 7월 8일. 1년 전인 이 날은 전북 익산 미륵사지와 금마 왕궁리유적 2곳을 포함해 충남 부여 관북리유적과 공주 공산성 등 모두 8곳이 ‘백제역사유적’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인 날이다.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은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사비성(泗?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왕궁지)과 부소산성(扶蘇山城)·정림사지(定林寺址)·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과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이다.

 부여군은 3개 도시 중 백제 혼(魂)을 되살리는 일에 가장 공력을 쏟고 있다. ‘세계유산사업단’을 조직해 별도 관리에 나섰다. 충남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했다. 현재도 정림사지 복원 등 중장기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 이에 부여군의 노력과 향후 추진계획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 멸망할 때까지 700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 왕국이다. 한반도에서 형성된 초기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중 하나다. 이 가운데 공주·부여·익산 3개 도시에 분포된 유적은 475~660년 사이의 백제 왕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백제역사유적은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기술, 예술, 종교를 받아들여 백제형(百濟形)으로 토착화시켰다. 백제는 문화기술선진국의 위용을 또 다시 일본과 동아시아로 전파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삼국의 찬란한 역사문화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근·현대에 들어선 정부의 문화정책이 신라 중심에 편중됐다. 상대적으로 백제문화는 뒤로 밀렸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백제문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원의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치논리가 역사문화까지 지배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는 2012년 ‘문화재보호법(1962년 제정)’ 개정과 이듬해인 2013년 ‘고도(古都)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2004년 제정)“ 개정, 그리고 전라북도(1999년)와 충청남도(2002년)의 문화유산보호조례에 의거하여 백제유적들은 사적(史蹟)으로 지정, 관리하면서 ‘백제혼 되살리기’에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 익산·부여·공주 공동노력

 익산시와 공주시, 부여군은 수년 전부터 노력해온 백제역사유적지구를 2010년 1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문화재청은 이듬해인 2011년 2월 3개 도시에 표된 유적을 통합, 우선추진 대상으로 선정했다. 2011년 12월에는 문화재청, 충남, 전북, 공주, 부여, 익산시가 협약을 체결하고 2012년 5월 재단법인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을 출범시켰다.

 2013년 2월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추진 전략’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 개최한 데 이어 9월에 영문등재신청서 초안을 완료했고, 2014년 1월 정식으로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접수했다. 한 달이 지난 2월에 유네스코로부터 심사대상으로 확정됐다는 낭보를 통지받았다. 2014년 몇 차례에 걸쳐 현지실사를 받은 후 2015년 5월 ICOMO(이코모스)가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한 데 이어 7월 8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당당히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 세계유산 등재 이후 큰 변화

 700년 역사의 백제유적이 세계유산 등재 이후 부여에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부여를 찾는 발길이 등재 이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부여군과 지역주민들이 백제유적 보존 및 관리에 쏟은 노력의 결과다.

 부여군은 백제 혼 되살리기에 군정을 쏟아왔다. 지역주민 및 관광객의 편의증진에도 적극 나섰다. 금년도에 세계유산 보수정비, 야간경관, 콘텐츠 개발, 홍보물 제작 등 세계유산의 명성에 걸 맞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나성(사적 제58호)지구는 복원현장을 공개해 공부하는 학생들과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세계유산 청소년 알리미’로 구성하여 세계유산교실 운영, 캠프 및 답사, SNS 홍보, 사례발표대회 등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는 한편 국립부여박물관, 부여교육지원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관광자원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부여에는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됐다. 충남도가 1993년부터 2010년까지 17년간 329만9000㎡(100만 평) 부지에 국비 8077억 원을 유치해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를 재현했다. 백제문화단지는 사비궁과 능사, 생활문화마을, 위례성, 백제고분을 이전 복원했다. 1400여년 간 잠들었던 백제를 21세기에 깨운 것이다.

 # 백제역사유적 개발방향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정림사지는 현재 5층 석탑과 절터만이 남아있다. 이에 인근 학교를 매입, 이전시키고 이곳에 정림사지를 복원하는 계획을 중장기사업으로 추진중에 있다. 능산리고분군은 연간 50억 원을 들여 조림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탐방지를 재정비하고 지속사업으로 나무를 식재한다는 계획이다. 2017년에도 6억 원을 확보, 재정비할 계획이다. 또 부여 나성 복원사업으로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올해까지 총 80억 원을 들여 진행하고 있고, 평지는 2012년부터, 산지는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백제유적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관북리 유적은 400억 원을 들여 이미 토지매입을 완료했다. 올해부터 야간경관을 위해 부소산성부터 시작했다.

 부여군의 향후 계획 또한 당차다. 최첨단 ICT를 활용해 볼거리, 느낄거리를 풍부하게 갖춰 나가는 것. 또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백제를 알리는데 주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정림사지의 성공적 복원사업을 마무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부여군은 충남도, 충청권 정치인 등과 연대해 백제역사문화도시 조성 특별법 제정,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고도이미지 찾기 사업, 관광콘텐츠 개발 등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서부내륙권 광역관광개발 사업과 홍산 일반산업단지 유치, 충청산업문화철도, 평택~부여간 서부내륙 고속도로 건설사업도 조기 착공되도록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 원종찬 부여군 세계유산사업단장…“역사보존 정부지원이 필수다”

 백제는 한성, 웅진, 사비시대를 거쳐 멸망했다. 그 가운데 사비시대는 백제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어 진미(珍味)다. 백제는 일본 아스카시대에 문화를 전수하는 등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신라, 고구려와 비교해 문화적 가치와 기술성이 앞섰다.

 현대에 이르러 중요한 과제는 찬란했던 백제시대와 현대의 융복합 활용이다. 먼저, 관광객 유치다.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어떻게 활성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달렸다. 부여는 이를 위해 청소년(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답사, 사례발표, 전문가 초빙 강연, 설명회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세계유산 알리미 역할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SNS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역사관련 전문기관과는 MOU를 체결해 관광자원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관광자원화 방안으로는 타지역 수학여행단을 유치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관계기관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비지원이 필수다. 그리하여 문화재청과 문광부 등 중앙공모사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부여군은 문화와 현대 융복합개발사업에 공모해 200억 원을 확보한 상태다.

  

 글/사진=부여 한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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