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
완벽한 사람(?)
  • 장상록
  • 승인 2016.07.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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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공용론’이나 ‘대한민국을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자는 우국론(?)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중국어 공용론’을 주창한 조선의 한 선비는 이렇게 얘기한다. “중국어는 문자의 근본이다.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쓰자. 그래야 오량캐 글자라는 모욕을 면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주장이 작가 복거일의 영어공용론과 많이 다른가?대한민국을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자는 주장은 어떤가. 그 연원은 외국어 공용론 보다 더욱 깊다. 멀리는 신라까지 얘기하기도 하지만 ‘입성책동’과 같은 본격적인 움직임은 원 간섭기에 등장한다.

  여기서도 논리적 배경은 유사하다.

  최초의 입성책동은 민족반역자 홍복원의 손자 홍중희에 의해 제기됐다. 현재 우리는 민족반역자 하면 이완용을 떠올리지만 조선 민중은 단연 홍복원을 떠올렸다.

  홍복원과 그 후손이 한국역사에 해악을 끼치지 않은 유일한 것은 수박을 들여온 것 뿐 이다.

 그런데 위의 두 논제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입성책동과는 달리 외국어 공용론은 단순명료하게 선악을 정리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중국어 공용론을 주창하며 위의 얘기를 펼친 사람이 다름 아닌 실학자 박제가라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마주하게 되는 당혹감은 이 외에도 적잖다.

 고려시대인 1276년 최초로 사역원을 설치해 몽골어, 중국어, 여진어는 물론 일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조선 초까지 외국어는 중요하게 취급됐다. 그래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는 외교업무에 등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 들어서 외국어는 역관들이나 하는 천한 것으로 취급된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에 대한 멸시 풍조가 더해져 만주어에 능통한 사람은 수를 꼽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

 정조가 건륭제에게 사신을 보냈을 때이다. 조선 사신을 접견한 건륭제는 이렇게 묻는다.

  “그대들 중 만주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에 사신단의 최고 책임자가 역관 현계백에게 감사 인사를 시킨다. 그러자 건륭제가 묻는다. “그대는 만주어를 잘 하는데 그대의 수장도 만주어를 할 수 있는 가” 만주어를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은 건륭제가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중국어는 할 수 있는 가” 이에 현계백이 답한다. “그 또한 못합니다.”

  이 말에 건륭제는 조선 사신들을 쓱 쳐다보고 비웃으며 지나쳤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모든 결과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정조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만주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영의정 김상철의 주장에 대해 이런 말로 면박을 준다.

  “만주어가 중국어 보다 중요한가?” 청은 만주족이 주인인 나라다.

  그런데 만주어가 중요하지 않다니.

  청 사신이 조선 관료 면전에서 만주어로 그 어떤 비밀 작당을 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나 건륭제의 비웃음은 모두 조선이 자초한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 영조가 누구보다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는 사실이다. 영조는 문관들에게까지 외국어의 증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단언한다.

  “역관들이 중국어를 잘한다 해도 문관들이 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흰 걸 검다고 해도 어떻게 알겠는가.”

 6.25 휴전협정 체결 후 북한 통역관 상당수가 처형됐다고 한다.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도 번역문제다. 이렇듯 완벽한 통번역은 쉽지 않다.

 외국어 전용론이나 입성책동은 한국역사에서 그림자다. 하지만 그것이 발생하게 된 실체를 외면한다면 문제는 되풀이 될 것이다.

 헤겔은 완벽한 인물의 전형으로 로베스피에르를 꼽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로베스피에르다. 다만 완벽함과는 별개로 로베스피에르가 그렇듯 정조와 박제가는 한국사의 소중한 자산이다.

 완벽함, 그것은 어쩌면 실체가 아닌 지향점에 가깝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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