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단상(斷想)
북한 단상(斷想)
  • 장상록
  • 승인 2016.06.08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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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홍콩에서 영화배우 최은희가, 그 얼마 후 신상옥 감독이 김정일에 의해 납치된다.

 북한은 얼마 후 두 사람을 순화시켰다고 자신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도 허용한다. 후일 공개된 녹음테이프에 나오는 김정일은 결코 신(神)적인 대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1983년 10월 19일, 두 사람에게 김정일은 이런 얘길 한다. “제도하고 관계있다고 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일 년에 한 작품 나와도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주고 작품 하나 써댔지.”

  사회주의가 가진 비능률과 관료화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지도 않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언급 하나다.

  “국산화하는데 엔진개발, 남조선 사람들 하는 것 보면 오토바이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엔진 가져오고 뭐 가져오고. 뭐 그저 다 조립품이거든. 승용차… 요새 뭐든가 그것도 다 완전히 조립품이란 말입니다.”

 비록 문제는 있지만 남쪽에 비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확고하다. 그것은 김일성도 다르지 않다. 1985년 1월 1일 두 사람을 만난 김일성의 대화다. “그러니까 서로 누가 누구를 먹을 내기만 하지 말고 서로 그 제도를 그대로 두고 자본주의는 남조선 경우에서는 그 썩은 제도를 당장 맡으라고 하기에도 곤란해 (남조선은) 500억 달러의 빚을 졌어. 500억 달러. 500억 달러라는 게 당신 생각해봐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오. 우리는 어떤가 하니 한 10억 달러 빚진 것도 그것도 돈벌이해서 올해, 내년에는 다 없애버리자고 하는데 그것도 공짜 이자가 나가지 않아.” 실제로 이 시기 김일성의 언급만이 아니라 남쪽에서도 ‘외채 망국론’이 심각하게 얘기되고 있었다.

 김일성 얘기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썩은 제도와 5백억 달러의 빚을 가진 한국을 북한에게 당장 맡으라고 해도 곤란하다’고 얘기한다.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제기되는 막대한 ‘통일비용’ 문제를 북한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문제에 대한 근본인식은 다르지 않다.

  김일성은 자신이 만든 왕국이 남쪽의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고 자신했다. 또 그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음모라면서 비난한다. 또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얘기하던 김일성은 통일 조국의 국호도 ‘신라’를 제외하고 어떤 것을 써도 좋다고 얘기한다. 이렇듯 자신만만했던 북한은 지금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있다. 조짐은 이미 김일성 당대에 충분히 나타났다.

  말년의 김일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이 어떻게 무너져가고 있는지 철저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황을 인식했을 땐 이미 난파 직전의 급박한 일들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는 완벽하게 상이한 이 체제는 굳이 비교하자면 조선왕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조선의 왕들이 민생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김일성도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폈을까. 연산군(燕山君)이 했다는 ‘왕의 미행’, 아니면 암행어사를 통해서.

 장성택의 최후에서 보듯 ‘종파(宗派)’를 철저히 금기시하는 북한에서 모든 정보 또한 단일한 방향을 향한다. 궁극점은 바로 김일성과 그 후계자들이다.

 문제는 그 정보들이 관료들에 의해 수집되고 보고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누구를 만날지, 어디를 갈지 모든 것이 정형화 되어있는 사회에서 관료는 말을 맞추고 현장을 단장하게 된다. 김일성이 보는 곳은 언제나 완벽했고 만나는 사람 그 누구도 문제를 얘기하지 않았다. 김일성이 아무리 열심히 인민을 만나도 그 수가 얼마나 될 수 있겠는가.

 김일성과 김정일은 갔다. 이제 김정은의 시대다. 그런 김정은이 보고 듣는 현장의 목소리는 과연 그의 선대와 비교해서 어떻게 변했을까. 김정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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