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둘레길, 스토리텔링의 고향
캠퍼스 둘레길, 스토리텔링의 고향
  • 이귀재
  • 승인 2016.05.26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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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산책을 겸하여 우리 대학의 둘레 길을 느긋이 걸었다. 대학 박물관을 끼고 건지산 기슭까지 내쳐 갈려는데 박하향이 곧 터질 듯한 허브와 야생식물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예술대 학생들이 그려놓은 유화도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멀리서 평소 가까운 공대 교수님이 대학원생들과 길가 앉아 환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함께 하다 보니 다음 달에 있을 학회 포스터 발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 늦가을에는 소설「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 동문을 기념하는 혼불 문학공원에 들렀다가 단풍나무와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편백나무 숲길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내가 태어났던 남원의 이야기들을 담은 ‘혼불’을 되새기다가 청명한 하늘 저편으로 미소 짓는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과 추억, 혼불의 기억, 가족 나들이의 즐거운 한때,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속삭임이 어우러지는 캠퍼스 둘레 길은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고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세상을 넘어 인공지능의 충격으로 새로운 기술패러다임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우리들에게 많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앞으로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 것인가, 우리의 미래 일자리는 어떻게 되고, 현재 우리가 아는 지식은 소용없어지는가. 어쩌면 해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듯하다. 바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더욱 인간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교육적 프로세스로 엮어보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서로 닫힌 벽을 허물고 광장에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communication), 사람과 전공마다 다른 관점(your point of view)을 끄집어내고, 서로 독특한 아이디어를 모아 융복합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그것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general knowledge and technology, 누구나 쓸 수 있는 범용의 지식과 기술)로 다시 창조해가는 것이다.

 창조와 혁신가들은 스토리텔링을 즐긴다. 세계 최고의 창조학교라고 불리는 스탠퍼드의 디스쿨(Design School)은 ‘생각을 디자인 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간단하게 디스쿨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관찰하고 서로 감정을 섞는 감정이입을 중시한다. 여기서 모은 자료를 토대로 당신의 관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팀원들이 공유하도록 한다. 이것을 ‘스토리 공유와 저장’이라고 부른다. 팀원간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새로운 창조적 제품이나 지식과 디자인’을 만든다.

 또 다른 스토리텔링의 사례도 많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신제품을 직접 프리젠테이션할 때 복잡한 수식과 논리를 동원하지 않는다. 청바지를 입고 최적의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할 뿐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글 딥마이드의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이세돌과 세기의 바둑대결을 성사시켜서 인공지능과 알파고를 순식간에 세상의 스토리로 만들어 버렸다. 극단적으로 바둑은 알파고를 알리기 위해 스토리 장치였다.

 캠퍼스의 둘레길을 더 걷다보니 연한 황토색의 생활관이 보인다. 거기는 지금 단순한 주거공간을 삶과 배움의 영역으로 결합시켜 공동체 학습과 문제해결 능력 등을 키우는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미래를 이끄는 창의적이고 모험적 인재를 키우는 산실이다. 모험은 역경을 극복하는 거창한 개념에만 머물지 않는다. 낯선 이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며 선뜻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전공을 과감히 내 것과 융합해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디자인하는 창조와 혁신적 자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레 길을 걷고 나니 대학원생과 함께하지 않은 아쉬움이 더 커진다. 이제 캠퍼스 둘레 길은 도민과 대학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넘어 사색과 대화의 공간으로서 수많은 이야기와 소통으로 ‘창조와 혁신을 만들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귀재<전북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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