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 김종일
  • 승인 2016.05.09 17: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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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인 5월의 황금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엊저녁, 거실에 홀로 앉아서 봤던 영화의 제목이다. 호주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렉스’라는 일가붙이 하나 없는 백인노인이 주인공이다. 허드레 막일로 입에 겨우 풀칠하는 동년배 영감들과 밤이면 밤마다 허름한 술집에 둘러앉아 시간이나 죽이다가 매일 밤 취해서 쓰러져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다시 택시를 끌고 나서는 무의미한 일상을 되풀이하는 독거노인이다. 앞집에 사는 볼품없이 덩치만 큰 싸낙배기 흑인 할머니 폴리가 내뱉는 구박에는 달관한 지 오래고, 아침이면 육두문자와 함께 건네주는 따뜻한 차 한 잔에 가끔 정겨움을 느낄 때도 있다. 자신에게 위암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병원을 찾은 어느 날 암이 여러 장기로 전이되어 길어야 석 달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게 된 렉스는 더 이상 의욕 없는 삶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스스로 존엄사(尊嚴死)를 결정하고, 법적으로 존엄사가 허용되는 ‘다윈’이라는 호주의 북부 도시로 자신의 택시를 몰고 멀고 먼 3천 킬로미터의 장도에 오른다. 애완견을 포함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폴리에 남긴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럽다.”

 이것은 렉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개발해서 우리 돈으로 3조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던 마커스 페르손이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지극히 불우했던 가정환경에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힘들었던 그는 오로지 컴퓨터에만 매달렸다 한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게임을 25억 달러를 받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겼다. 우리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현재 넘쳐나는 돈과 넘쳐나는 주변의 친구들을 가진 그도 고백하기를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럽단다.

 지난주 일주일 동안 한국국제협력단 사업의 일환으로 네팔에 다녀왔다. 네팔은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지역에 있는 글로벌에코비전이라는 국제봉사단체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약간의 금전적 후원을 하는 네팔의 다섯 학생들과 관리교사를 일요일 점심에 초대해서 조촐한 식사를 마친 뒤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모두 아침에 세수는 했는지 교복은 대체 빨라 입은 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수수한 차림이었다. 첫 대면의 쑥스러운 기색이 얘기가 오가며 점차 사라지면서 밝게 웃는 모습이 모두 무척 밝았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지기 전에 필자는 다섯 학생에게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모두 무척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의외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마커스의 고백이나 어린 네팔 학생들의 환한 끄덕임이 말해주듯 행복이 경제력에 크게 비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몇 차례 우여곡절과 에피소드 끝에 죽기 위해 다윈을 찾아간 렉스는 결국 자신의 택시를 몰고 그 먼 길을 다시 돌아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물론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길인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는 렉스가 존엄사를 포기하고 돌아온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잔잔한 배경 음악과 아름다운 석양 노을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오갈 수 있는 평범한 대화가 전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버이날이라고 막둥이가 매달아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소파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누가 감독이라고 해도 삶과 죽음 그리고 행과 불행에 대해 감히 더 이상 깊숙이 논할 수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것이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을 것이다.

 렉스가 폴리의 어깨에 지친 머리를 기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딱히 아름답지도 부럽지도 않은 이 장면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라도 있다는 생각.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막둥이가 카네이션이랑 같이 사다 준 케이크를 냉장고에서 꺼내 남김없이 다 먹었다. 성의를 생각해서 딱 한입만이라도 먹어보라는 막둥이 청을 매몰차게도 무시했던 터였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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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2016-12-28 08:09:30
어제 한잔 마신 술 때문인지...감상평에 대해 더 와닿는 이유가 뭘까요?...
잔잔한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