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없는 삶
책이 없는 삶
  • 장상록
  • 승인 2016.04.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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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의 첫 날을 맞이한 곳은 로마의 유스호스텔이었다. 자정 무렵 그곳에 있던 모두는 피부와 국적을 떠나 서로에게 축복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그 날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한 권의 책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식당에서 마주한 미국 대학생이 들고 있던 책,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카프카를 보고 반가움에 이렇게 말했다.

  “나도 카프카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인 그의 얼굴엔 이렇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네가 카프카를 알아?”

 내가 대학에 들어와 접한 소중한 책들은 지금까지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카프카를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고 기쁨이었다. 내가 카프카를 알고 있음에 놀라워했던 그 미국 대학생의 반응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일 수 도 있고 아닐 수 도 있다. 아마 그가 내게 퇴계(退溪)와 [사기(史記)]를 얘기했다면 나 역시 그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이 ‘베트남 5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말하는 호치민(胡志明). 그런데 적잖은 기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호치민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며 그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접한 후 죽는 날까지 그 책을 곁에서 놓지 않았다고. 그래서일까. 호치민이 평생 다산의 기일에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전설처럼 들린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종묘(宗廟)와 과거(科擧)를 공유하는 유교문화권인 만큼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읽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호치민은 그 책을 어떻게 접했을까. 

  이설이 없지 않지만 전달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이정(而丁) 박헌영(朴憲永)이다.

 호치민이 레닌의 도움으로 모스크바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박헌영과 그의 아내 주세죽(朱世竹)도 함께 있었다. 주세죽은 가히 한국의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로 불릴 만한 미모를 갖춘 혁명가였다. 박헌영이 일제의 가혹한 고문에 신음할 때 그의 곁엔 주세죽이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둘의 사랑을 갈라놨다. 그리고 둘에 대한 평가도. 여전히 금기의 영역에 남아있는 박헌영과는 달리 주세죽은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2007년 복권돼 건국훈장을 수여 받았다. 

  주자(朱子)는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 연못의 물이 맑을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물이 흘러온 까닭이라 했다. 삶에서 꾸준하고 폭넓은 독서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호치민의 경우에서 보듯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프랑스와 모스크바에서 유학하고 한학(漢學)에도 정통했던 호치민이지만 삶의 지표를 세워준 것은 박헌영이 전해준 [목민심서] 하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에서 호치민과 [목민심서]의 얘기가 박헌영이 자가발전 한 것이라고 제기한 의혹은 그것대로 규명할 문제다. 

  조보(趙普)는 조광윤(趙匡胤)이 송(宋)을 건국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런데 매일 3권의 책을 읽었다는 호학군주 태종(太宗) 치세에 조보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보는 지금까지 읽어본 책이라곤 [논어(論語)] 한 편이 전부다.” 이에 송 태종은 조보에게 묻는다. “지금껏 [논어] 한 편 읽은 것이 전부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사실인가?”

 그에 대한 조보의 답이다.

 “예, 과거 [논어] 반 권으로 태조를 도와 천하를 평정했습니다. 지금은 [논어]의 나머지 반 권으로 폐하를 도와 천하의 태평을 일궈냈습니다.”

  영혼의 작가로 불리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를 읽고 이렇게 감탄한다.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 그런데 그런 걸작을 남긴 세르반테스는 정규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의 글에 힘을 준 것은 오로지 꾸준한 고전 탐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벨 문학상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 노벨 문학상에는 왜 그리 목매는지 모르겠다.”는 외신의 비아냥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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