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만약에
  • 유길종
  • 승인 2016.04.1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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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더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다. 보수 여당이 제1당에서 밀려난 것은 이승만 시절인 1950년 2대 총선 이후 처음이라고 하고, 호남에서 더 민주당이나 그 전신이 이렇게 참패한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참패의 원인을 분석해보는 차원에서 몇 가지 가정을 해본다.

#1 이번 선거결과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선, 불통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이론이 없어 보인다. 그 중 누구라도 조금만 덜 오만하고 조금만 덜 독선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내 탓’이 아닌 ‘네 탓’으로 온갖 비난을 받아왔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지경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총선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이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논평한 것도 유체이탈 화법이다. 말로라도 책임을 인정하는 척했다면 상황은 훨씬 좋았을 것이다.

현 정권이 출범한 이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는 여론을 무시하고, 야권의 필리버스터도 무시하고, 테러방지법이 우격다짐으로 통과되었다. 그 법률의 내용과 이를 밀어붙이는 과정을 보면서 필자와 같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느끼게 된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 보수주의자들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이번 총선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인사탕평을 제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현 정권의 요직이란 요직은 영남, 그것도 대구·경북 출신이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전북의 경우 몇 년째 무장관 상태이고, 차관인사에서도 전북출신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지역차별을 떠나 현 정권의 인사난맥과 불통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현 정권이 인사에서 영남 패거리주의에서 벗어나 조금만 인사탕평에 신경을 썼더라면 총선 결과가 이랬을까 싶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4·13총선을 하루 앞둔 12일 국무회의에서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여 사실상 야당 심판을 주장했고, 선거 며칠 전까지는 지방을 순회하며 국회 심판론을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것들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으로 비쳐 민심 이반에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친박은 더 가관이었다.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가 대표적이었다. 이재오 의원을 컷오프 시키고,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을 끝까지 미룬 것은 어떤 명분도 찾기 어려웠다. 국민들의 시선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친박을 자처하는 자들의 오만한 행동과 막말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이들이 국민들을 의식하여 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조심했더라면 이런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야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박들이 이번 승리의 일등공신이다.

#2 호남에서 더민주당이 참패하고 국민의당이 압승을 거둔 원인에 관하여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반 문재인 정서의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필자는 전북에 살고 있으면서도 반 문재인 정서가 왜 이렇게 심해졌는지 잘 이해를 못 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호남차별, 호남홀대의 주역이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체는 없어 보인다.

필자는 문재인 전 대표가 새누리당 출신의 김종인씨를 영입하기까지 할 것이었으면서 호남의 여러 의원들이 더민주당을 탈당하도록 방치하였는지 궁금하다. 그때 문재인 전 대표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금만 더 일찍 대표직을 사퇴하고 이들을 포용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이번 총선의 결과는 예상했어야 맞다. 정치인들이나 언론, 심지어 정치평론이 직업인 사람들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 못했다는 것은 이들이 유권자들의 수준과 생각을 제대로 읽을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들 국민들을 어렵게 생각하고 겸허히 반성할 일이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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