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의 세상살이] 칭찬
[정성수의 세상살이] 칭찬
  • 정성수
  • 승인 2016.04.19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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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스컴은 물론 일상에서도 칭찬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모는 자식들을 나무라고 꾸중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칭찬에 인색한 것은 우리 자신이 칭찬을 듣지 못 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이나 콩나물 교실에서 칭찬보다는 질책이나 비난을 통제수단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만연했던 탓이다.

  칭찬에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이미 갖추고 있는 특질에 대한 칭찬은 큰 의미가 없다. 이 경우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요인은 있지만 반복될수록 감동은 반감된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지겨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어떤 일을 잘해 냈을 때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칭찬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객관적인 의미를 짚어 정확하게 칭찬해 주면 금상첨화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칭찬은 만병통치약이다. 칭찬으로 안 낫는 병은 없다. 칭찬은 레퍼토리가 풍부할수록 좋다. 그런가하면 칭찬은 칭찬으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나야한다.

  반대로 질책은 아이가 인정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해명이나 소명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가 납득하지 않는 질책은 아이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아이가 질책 받은 이유를 인정하면 ’질책은 이것으로 끝‘ 이란 것을 알도록 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질책이 남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책은 애국가가 아니다. ‘귀가 마다고 하는 질책은 1절만!’해야 한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칭찬이나 질책은 모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것은 자존감을 높이거나 반성하는데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라는 게 있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다.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또 다른 에너지를 창출하는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칭찬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불로초이며 두 사람간의 인연을 튼튼히 묶어 주는 동아줄이며 적과 동침을 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최고의 명약이다. 늘 가까이 있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에게 ‘당신 멋있어 졌어!‘ ‘나, 시집 잘 왔어!’ ‘우리 아들이 최고야! 우리 딸 효녀야!’ 칭찬을 하고 이웃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인생 팔십 년이 행복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상대를 짓밟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비방하고 깎아 내리려고 한다. 이러한 경쟁의식은 악순환을 초래하고 결국 우리들을 파멸로 이끌고 만다. 칭찬이야말로 광속으로 변화하는 오늘 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구이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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