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해먹어라!
그만 좀 해먹어라!
  • 김종일
  • 승인 2016.04.07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엊그제 이번 20대 총선에 서울에서 출마해 6선을 행해 유세 중이던 어느 5선 현역의원에게 어느 술 취한 시민이 “그만 좀 해먹어라”는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해 입건되는 일이 있었단다.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일은 아니지만, 잘잘못은 차치하고, 우리나라 특히 우리 전북지역의 정치 현실에 비추어 되새겨 볼만한 점들이 다소 있는 것 같아 이번 총선과 관련된 개인적 관점과 희망을 몇 자 적어 본다.

 이번 총선은 과거의 어떤 선거보다 재미지다. 막상 당사자들이야 피를 말리겠지만, 필자와 같은 무심한 관전자 입장에서 보면 돈값 제대로 하는 구경거리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과정도 나름 흥미로웠지만 다음 주면 나타날 결과 또한 어느 때보다 궁금하다. 사실 우리 지역에서 지금까지 치러졌던 대부분의 선거는 투표하는 재미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솔직히 지난 십년간 필자는 기표소를 찾은 일이 없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허수아비를 꽂아 놓아도 당선되는 선거이다 보니 품삯도 안 나오는 판에 굳이 거동할 하등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투표할 생각이다. 아마 역대 어느 선거보다 우리 지역의 이번 총선 투표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새로이 등장한 3당 체제로 인해서 20대 총선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전북에서 보기 어려웠던 ‘선택’이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환경이 펼쳐졌다. 오로지 특정 정당 하나였던 이곳에서 애초에 선택이란 무의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선거는 ‘선택’이 의미가 있는 사실상의 첫 번째 선거라는 점에서 과거의 선거들과 확실히 구별되고 결과가 보여주는 의미도 남다르다고 본다. 현재 펼쳐지는 상황으로 인해 도민들의 시각의 폭과 생각의 깊이에 변화가 감지된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예전과는 사람들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필자가 느끼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과거 우리 전북의 낙후와 쇠퇴의 원인을 줄곧 외부에서 찾아왔는데, 이제는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안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과거 영남 정권에 의한 호남 차별이 주된 성토의 대상이었고 그에 대한 한풀이 성격으로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습관적 투표가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에 못지않게 ‘못난 전북의 정치인과 정치 풍토’가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우리 전북에서는 해방 이후 대부분 특정 정당의 독주 아니 독재 체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과 정부의 차별과 홀대의 핍박으로부터 구해주겠다던 그들을 우리 도민들은 신임했고 몰표를 주었다. 정당의 이름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고 여전히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믿고 지지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기대치와 거리가 멀었다. 차별과 홀대는 여전하고 낙후와 쇠퇴는 나날이 가속화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상황에서 눈을 돌릴 곳은 하나뿐이다. 우리 스스로 개혁하는 것이다. 바로 ‘못난 전북의 정치인들과 정치 풍토’.

 들어 보면 3당 체제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도민들에게 여당은 아직까지 딴 나라 이야기고 근자에 갈라선 두 야당 사이에서 선택이 주요 이슈인 것 같다. 한 정당이 둘로 쪼개져 나온 것이니 실제로는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이야깃거리는 된다. 두 야당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이 그다지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총선 후에 두 야당이 십중팔구 다시 통합할 건데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전망과 의견도 적지 않다. 공통으로 회자하는 것은 지역에 대해 좀 더 공헌할 수 있는 인물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공감하는 도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도내에 일 제대로 한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에는 거의 전적으로 동감하는 분위기다. 자기 한 몸 챙기기에 바쁜 ‘생계형 국회의원’들뿐이라는 지적에도 머리를 끄덕인다. 아마도 소속 정당을 떠나 덜 미운 후보에게 표가 가는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동안 습관적으로 지속했던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가 긍정적인 작용 못지않은 부정적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도민들이 많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3당 체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우리 전라북도 정치권의 개혁이 우선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고여 있던 물이었으니 현재 우리의 상황을 족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만 좀 해먹어라’는 말이 아니 나올 수 없는 작금에 이른 것 아닌가 싶다. 결과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우리 도민들이 우리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고자 하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성과 자각에 따른 스스로 개혁에 성공한다면 우리 전북의 미래는 밝다. 희망의 빛이 보인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신재생에너지소재개발지원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