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의 세상읽기 <7>지갑 紙匣
정성수의 세상읽기 <7>지갑 紙匣
  • 정성수
  • 승인 2016.03.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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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갑은 가죽이나 비닐, 헝겊 따위로 만들어 돈이나 각종 증명서 따위를 넣는 데 쓰는 물건이다. 잃어버리면 ‘흠좀무’ 해지는 것이 지갑이다. 나이가 들수록 돈에 집착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돈을 쥐고 있으면 자식들이나 이웃들에게 괄시를 안 받는 다고 생각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돈이 많아도 만족을 모르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지갑을 열면 자식도 부모를 자주 찾고 손자들도 안겨 온다. 지갑을 열면 떠난 친구도 돌아온다. 그런가 하면 사장님이 되고 젊은 오빠가 된다. 꼭 구분된 건 아니지만 여성용 지갑은 길쭉하고, 남성용 지갑은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작다. 여성용은 카드, 지폐, 동전 등을 넣는 곳이 구분 돼 있지만 남성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갑을 연다. 누구는 지갑의 두께에 따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물론 지갑에 돈이 가득 들어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만족할 만큼의 돈이 없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많지만 생각의 끝은 지갑을 여는 순간 산산이 무너지고 만다. 지갑을 펼치면 자랑할 만한 명함 하나 없다. 어떤 사람이 명함 하나를 요구하면 쭈뼛거리기 일쑤다.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는지 후회를 감당하기 벅찬 것 또한 사실이다. 붙잡고 싶었던 사랑의 순간도, 매달리고 싶었던 욕망의 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도, 비어 있는 지갑 속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채우는 일에 급급한다. 머리에는 지식과 정보로 채우고 가슴은 사람으로 채우고 지갑은 돈으로 채운다. 알고 보면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머리를 비워야 하고 머리를 비워서 쓸데없는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한다. 가슴에 채운 사람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봉사하면서 최대한 비워 허심자虛心者로서 살아야 한다. 두툼한 지갑은 헐벗고 가난하고 소외 된 이웃을 위해서 열어야 한다. 비우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체념하고 절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비우는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상사 중에 최고의 상사는 가끔 술이라도 한잔 사면서 어깨를 다독여 주는 상사다.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입만 가지고 다니는 친구는 오래 갈 수 없다. 우정이라는 말 속에는 지갑을 자주 열라는 의미가 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퇴근길이나, 함박눈이 내리는 저녁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 싶으면 지갑을 열어놓고 친구를 부르면 된다. 득달같이 달려 올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은 얼마나 쓸쓸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다.

  나이를 먹으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수의에는 지갑을 넣을 포켓이 없기 때문이다. 채우기만 하다가 지갑이 터지는 수가 있다. 잘못되면 붉은 벽돌집에 들어앉아서 회한의 세월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감을 열면 행복바이러스가 곳곳에 퍼져나가 살만한 세상의 된다. 입을 닫고 지갑을 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특히 황혼을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제1 덕목은 지갑을 여는 것이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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