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을 널리 배포하라!
‘친일인명사전’을 널리 배포하라!
  • 이동희
  • 승인 2016.03.09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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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편찬, 출판한 <친일인명사전>을 각 학교에 배포하기로 2014년 서울시 의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한 사안을 교육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이 사전의 편찬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친일인명사전>의 배포에 발목을 잡는 교육부는 어느 나라 교육부인지 모르겠다”고 개탄하였다.

 <노자>33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인자지(知人者智) 자지자명(自知者明) 승인자유력(勝人者有力) 자승자강(自勝者强) - 남을 아는 것은 슬기이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을 취함이고, 자신을 이기려는 것은 무릅씀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요체는 ‘者’를 ‘사람’이 아니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남을 아는 자가 슬기로운 것이 아니라, 남을 알려고 하는 것이 바로 슬기로움이며, 자기를 아는 자가 현명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알려고 하는 것이 밝음이다. 마찬가지로 힘이 있어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기려 하는 것은 바로 힘을 취하려는 것이고,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기려 하는 것이 바로 온갖 역경을 무릅쓰려는 것이다. 결과의 눈으로 보지 않고 원인의 편에서 바라보니 전혀 다른 생각에 이른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두고도 마찬가지 해석에 닿을 수 있다. 우리가 슬기로워서 일본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바로 알려는 노력이 바로 우리의 슬기로움이며, 우리의 힘[국력]이 강해서 일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이기려면 온갖 역경을 무릅쓰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일본을 이기는 것[克日]은 먼저 일본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知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적을 알지 못하고서 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도사리는 사대주의와 제국주의적 친일파의 망상을 제대로 알고 극복하지 않고서는 지일은 고사하고 극일은 요원한 일이다.

 러시아에서 귀화한 한국인으로 본래 한국인보다 더 한국 역사에 정통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는 친일에 대하여 이렇게 규정한다. “친일의 ‘일’은 ‘일본’이라기보다는 ‘일제’를 가리킨다. ‘친일파’는 정확히 말하면, 일제 식민당국이라는 정통성 없는 권력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거래’를 자발적으로 진행하여 광의의 지배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점하려는 피식민 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그들 친일파의 행위는 ‘민족적 배신’이라기보다는 ‘무법적 권력에 대한 부역’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한겨레.’16.2.26.자)

 국제화시대에 이웃 나라와 선린우호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횡포로 남의 나라를 짓밟고 그 힘으로 권세와 이득을 누린 개인과 그 후손들이 여전히 그 시대의 유물을 버리지 못하고 옹호하거나 지속해서 누리려 하는 것이 진짜 ‘친일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 시인 혼다 히사시(本多壽)가 쓴 <무궁화 환상>이란 시가 있다. 전체 6연 중 1. 2, 6연만 소개한다. <길이란 길에는 모두 한 줄로 늘어서서/ 창공을 향해/ 높이높이/ 순백의 꽃을 바쳐 올리고 있는 무궁화// 저것은 일찍이 모국어를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기고, 끝내는/ 이름까지 빼앗긴 사람들의 유한(遺恨)과/ 하늘에 닿지 못하는 기도의 모습// (중략)나는 무궁화가 피는 길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말없이 걷는다/ 따끔따끔 통증이 이는 발을 어루만지며 걷는다/ 가슴의 동통(疼痛)을 쓰다듬으며 걷는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통절한 반성과 연민의 참회를 하고 있거늘, 민족을 배신하고 무법적 권력에 부역하여 얻은 권세를 그 후손들이 여전히 누리며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일은 우리 자신보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모름지기 우리나라 교육부라면 <친일인명사전>을 각 학교 도서관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모든 도서관에 배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자기를 알려는 무릅씀의 힘이다. 그 힘만이 우리가 우리를 아는 밝음이며, 우리가 우리를 이기는 무릅씀이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의 부끄러움도 무릅쓸 밝음이 있어야 비로소 일본을 이기고[克日] 제대로 선린우호[親日]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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