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대전환’을 위한 창업세트메뉴
전북 ‘대전환’을 위한 창업세트메뉴
  • 이헌승
  • 승인 2016.02.29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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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식당이 있다. 예약도 받지 않는다. 이런 식당은 주로 단품메뉴를 제공한다. 우리 전북에도 제법 많다. 하지만 음식의 풍성함과 화려함은 역시 세트메뉴에서 나온다. 이것을 먹으려는 예약이 넘친다. 심지어 예약 후 5년을 기다려야 하는 식당도 있다.

 미국 뉴욕주 얼튼에 있는 ‘데이먼 베이럴’(Damon Baehrel)이 그런 곳이다. 이곳은 그나마 2014년부턴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단다. 2025년까지 예약이 끝나서다. 주방장·웨이터를 겸하는 주인이 직접 기른 유기농산물로 만든 15가지 요리를 5시간 동안 제공한다.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곳까지 찾아와 음식을 즐기며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우리 지역에도 세트메뉴가 있다. 한정식이 대표적이다. 한정식 식당은 대체로 서너 가지 세트메뉴를 제공한다. 예약이 넘치는 한정식 식당은 계절과 지역을 담아 다양한 반찬을 내놓는다. 몇 가지 주 요리도 제공한다. 깊은맛과 멋을 지닌 후식도 제공한다. 모두가 맛깔스럽다. 여기에 우리지역 전통주를 곁들이면, 대화가 풍성해진다. 비즈니스도 더 원활해진다.

 창업자는 어떤 메뉴를 좋아할까? 단품이든 세트메뉴든 아마도 각자의 식성과 기호를 따를 것이다. 그런데 창업에 필요한 정보·지식·기술·금융·마케팅·인사·조직·경영 등 부문별 단품메뉴만 원하는 창업자도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생·청년 초보 창업자에겐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다른 지역으로부터 와서 우리 전북에서 창업하려는 기업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창업세트메뉴’이다. 그것도 맛있는 반찬처럼 각 부문의 ‘전문성’이 깊어야 하고, 맛깔스런 주 요리처럼 융·복합된 ‘세트메뉴’로 제공되어야 한다.

 서울에서 온 사람이 유명 한정식 식당에 갔는데 과연 이럴 수가 있을까? “세트메뉴 주 요리인 갈비찜은 ㄱ식당으로 가서 드시고, 잡채는 ㄴ식당에서, 밥과 국은 ㄷ식당이 맛있으니 거기 가서 드세요.”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이다. 하지만, 창업가에겐 이것이 곧 현실이다. 실제로 내가 직접 경험한 현실도 그렇다. A연구원에 갔더니 연구·분석은 B청에 가보란다. B청에 가면 C센터에서 지원한단다. C센터에서는 맛 좀 보여주고, 마케팅은 D본부를 소개한다. 우리지역에 투자하려는 외지인의 마음을 얻으려는데 도대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탄소산업과 농·생명산업은 우리 전북의 ‘대전환’을 가져올 소중한 토양이다. 이곳에서 미래 사업을 키우겠다는 국내외 투자자가 오면, 당연히 ‘창업세트메뉴’를 제공해야 한다. 발품을 파는 것은 그저 창업가 몫이라고 생각하는가? 공공부문엔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런 사람은 마치 이런 식당 주인과 같다. 즉, 멀리서 와서 기꺼이 많은 돈을 내고 맛있는 한정식 세트메뉴를 먹으려고 온 손님에게 이 식당 저 식당으로 가보라고 권하는.

 누가 식당 주인을 자처해야 하는가? 누구보다도 도·시·군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매력적인 ‘창업세트메뉴’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지역 중앙부처 유관기관도 ‘독점적인’ 단품메뉴로 허세를 부릴 일이 아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중국 선전에는 창업세트메뉴를 제공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많다. 서울이나 대전에도 있다. 하지만, 우리지역엔 없다. 우리 전북의 ‘대전환’을 위해선 세계 각국의 창업가들이 몰리도록 창업세트메뉴를 ‘한곳에서’ 제공해야 한다. 단품메뉴를 엮어주는 ‘네트워킹’만으론 중국에도 뒤진다. 2030년을 위한 획기적인 구상과 시도가 필요하다. 고객중심 융·복합체인 한정식에서 그 지혜를 얻자.

 이헌승<전라북도 경제분석 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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