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극복이라는 사명감
한계극복이라는 사명감
  • 유길종
  • 승인 2016.01.21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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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송기석 전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가 20여년 간 몸담았던 법원에서 퇴직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지난 14일에는 24년을 판사로 재직하다가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장을 끝으로 퇴직한 박희승 전 안양지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오랫동안 공정한 판결로써 국민을 위해 봉사해온 판사들이 이제는 국민을 위한 법률을 만드는 봉사를 위해 정계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박희승 전 안양지원장은 전북 남원출신으로 1992년 판사로 임관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장 등을 두루 거친 전북의 인재이다 보니, 그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송기석 전 부장판사와 박희승 전 안양지원장은 출신도 다르고, 입당한 당도 다르지만, 그들이 밝힌 소신은 ‘사법작용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송기석 전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국민의당에 입당하면서 사법작용을 통한 사회변혁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를 정치를 통해 극복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박희승 전 안양지원장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재판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면서 판사생활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혀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들이 말하는 한계란 아마도 판사의 직분에 충실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단을 내리는 데에서 오는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말할 것이다. 성문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다 보면 분명히 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편한 현실이 초래되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판사들의 정계진출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 같다. 판사가 정치계 진출을 고려해 공정성과 합리성을 잃은 재판을 진행했을 것이라거나, 기득권을 가진 법조인들이 정계에 진출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거나, 평소에도 믿을 수 없는데 정계에 진출하면 더 큰일이라는 등의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국민들의 사법불신에서 초래된 면이 없지 않다. 자질 없는 일부 판·검사, 상인이 되어버린 일부 변호사, 국민들의 뇌리 속에 깊게 박혀 있는 전관예우라는 단어는 사법부에 대한 끊임없는 불신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와 같은 사법불신의 불씨는 자연스럽게 정계에 진출하는 판사들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 붙고 있다.

 사법불신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질지 않겠지만, 판사들의 정계진출을 위한 소신과 열정의 불씨 또한 쉽게 사그라질지 않았으면 한다. 송기석 전 부장판사와 박희승 전 안양지원장의 말처럼 사법영역에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하고 있고, 사법영역에서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판사의 직무에 충실했는데 오히려 국민의 불행이 초래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가 더욱 음지로 내몰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법원의 판결을 불신하고, 사법부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이 모든 일들이 판사들의 정계진출로 일거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균형 잡힌 시각과 지식, 그리고 공정성과 청렴성에서 비롯되는 봉사정신이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국민들의 사법불신의 불씨를 점점 약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법원에서 퇴직하고 정계에 진출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을 것이다. 심사숙고하여 어렵게 결정한 만큼 초지일관하여 국민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고, 약속했던 한계극복을 위해 사명감으로 헌신하기 바란다. 그래서 판사들의 정계진출에 대한 우려도 일축되고, 사법영역에서 해결될 수 없었던 사회정의의 실현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유길종<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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