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보육정책
흔들리는 보육정책
  • 유희태
  • 승인 2015.12.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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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연말이 되면 직장 맘들이 일하는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는 시기이다. 하지만, 정부가 또 한 번 부모들의 근심을 더해주고 있다. 최근 누리과정 예산편성 논란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흔들리고 있다.

 누리과정은 대한민국 모든 영유아에게 동등한 질적 수준의 교육과 보육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아교육·보육과정이다. 이전에는 유치원에서 유치원교육과정, 어린이집에서는 표준보육과정으로 이원화되어 진행하였지만, 2012년 5세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3,4세에게도 ‘누리과정’을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는 것은 물론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의 유아에게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원래 누리과정사업 예산 지원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나누어 부담하던 것을 2012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하도록 하여 2015년부터는 전액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관련 비용을 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확정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최근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임시총회를 열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법률적으로 교육감의 책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시도교육청 재원으로는 편성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2016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 또한 “정부의 전액 지원이 아니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에는 변함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힘들다고 시도 교육청으로 떠넘기고 시도 교육청은 시도교육청대로 힘들다고 정부 탓을 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서로 떠넘기기 급급한 이때에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은 정부도 시군교육청도 아닌 우리 부모와 아이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 부모들은 어린이집을 보낼 경우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국공립 유치원 취원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어린이집 기피, 유치원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실제로 올해 전주 모 공립 유치원의 만 3세 반 경쟁률이 7.4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4세반의 경우 26대1, 병설유치원의 경우 8.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공립유치원의 4.36대1, 사립유치원의 1.08대1의 경쟁률에 비해 월등히 쏠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대학 입시 경쟁률도 아니고 유치원 경쟁률이라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면서도 행여나 지원한 공립유치원에 떨어지면 비싼 교육비를 감당하면서 사립유치원에 아이들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하고 있을 부모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기 그지없다.

 도교육청에서는 국·공립 유치원은 교육비가 전액 지원되는 반면 사립의 경우 전주기준 월 15~20만원정도의 원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공립유치원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에 지친 학부모들이 공립유치원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직장맘들의 가장 큰 고충이 바로 육아이다.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흔들리면 일하는 부모는 불안해한다. 핵가족화 시대에 정부가 일하는 부모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보육과 교육이다. 안전한 보육과 부담 없는 교육만이 맞벌이하는 젊은 세대를 도와주는 길이요 나아가서는 저출산을 해소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말로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우려하며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정작 가장 기본된 복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채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라고만 하는 현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정작 육아의 부담을 안고 경제적 고충을 견디어내며 살아가는 직장맘과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아닌 선생님의 손에 길러져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도 그들은 감히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에 대한 논란을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 학부모와 시도교육청간의 싸움만 부추기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누리과정 체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유아교육은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를 가늠하는 꼭 필요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유희태<전 기업은행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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