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으로부터]<4> 베를린에서 온 편지
[동방으로부터]<4> 베를린에서 온 편지
  • 심홍재
  • 승인 2015.11.1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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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잎이 눈처럼 떨어지는 아침,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유레일 열차는 프라하를 떠나 만추의 풍경을 펼치며 베를린으로 향한다. 다섯 시간 여를 달리던 기차는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고 마중 나온 숙소 주인 부부는 많은 짐에 흠칫 놀라지만 우린 능숙하게 2대의 승용차에 구겨 싣고 숙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서의 여정은 3박 4일. 이틀 후에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행사를 하기로 하고 방진과 나를 제외한 식구들은 시내 구경에 나섰다.

  한참 후 돌아 온 석환형은 지갑을 소매치기를 당했다며 급히 들어와 난리법석으로 숙소를 뒤집는다. 프라하에서 휴대폰을 잃어 버렸으면 조심할만도 한데, 형의 덜렁거림으로 인해 팀들은 분위기가 완전 저하(?)되고 말았다. 한국은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이지만 카드분실 신고를 위해 연락을 부랴부랴 하고는 넉살좋게도 코를 곤다. 참 부러운 시스템이다.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서둘러야 할 풍경이 고요하다. 석환형의 다운된 기분 덕에 모두 숨죽여 있다. 난 방진의 약을 구하기 위해 숙소 근처의 약국을 찾아 혼자만의 외출을 나섰다. 토요일이라 약국의 문을 일찍 닫는다는데 발걸음이 바쁘면서도 혼자만의 산책이 그만이다. 주말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가끔씩 하늘을 나는 새들의 향연들이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호사보다 먼저 들어선 약국에서의 어려운 대화와 낯선 의학 용어들로 소통이 안 된다. 다행스럽게 네 번째 약국에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한단다. 결국 몇일 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한 대변을 위한 변비약만 구해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숙소의 분위기도 여전히 다운돼 있다. 안 되겠다 싶어 내일로 예정된 행사를 오늘하고,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니 행사 후에 전체 회식을 하자고 제안하니 모두들 동의하며 분위기가 조금은 되살아난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2시에 브란덴부르크 광장으로 향했다.
 

 택시로 도착한 브란덴부르크 광장에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서둘러 행사 준비를 하는데 한국에서 오신 몇 분이 평화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우리의 여정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며 큰 관심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떠나지 않고 끝까지 힘을 보탠다. 모두의 염원을 한데 모은 12지로 연결 지어진 한지를 태우고 소망 메시지가 가득 담긴 죽부인을 치켜세워 지나가는 관객들의 동참을 유도해 바닥에 펼쳐진 한지에 기원 메시지를 한참 적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이라는 무리가 다가온다. 독일어를 잘 모른다고 해 그냥 자국어로 평화의 메시지를 적어 달라고 했다. 그들은 한참을 고민 끝에 평화를 상징하는 문양을 그리고는 간단하게 메시지를 적었다.

 행사를 마치고 언젠가 우리의 휴전선도 이렇게 통과할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하면서 브란덴부르크의 관문을 통과했다. 통일 독일의 거리를 읽는다. 진정한 자유를 꿈 꿔본다.
 

 / 심홍재 ‘동방으로부터’여정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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