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민중)의 침묵
님(민중)의 침묵
  • 임보경
  • 승인 2015.10.18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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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하늘을 보면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감사하고 이 땅에서 살게 됨에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 와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걸려온 중학교 동창생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커가는 친구의 아이들에게 재산분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절반은 나를 살아가게끔 지탱해준 대한민국에게 환원하고 신체 전부는 기증 문서화했기에 이 몸 또한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친구의 통보를 듣게 되었다. 잠시 부끄럽고 존경스런 마음과 뿌듯함에 정신이 번쩍나는 시간이었다. 친구의 메시지와 함께 용기를 얻어 거리에 나가보았다.

국정원역사교과서 반대 서명운동의 제목을 달고서 전주시민을 만나보았다. 우리의 시절은 바른 역사를 가르쳐 준 스승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고액의 수강료를 지불해도 해결되지 않은 갈증과 미묘한 헷갈림 속에 답답했으며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잊은 채 살아왔다. 그리고 나약해져 왔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나였고 우리였음을 거리에 나와보니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역사왜곡, 올바른 역사’그들의 반응은 수동적으로 표현되거나 멀리서 쭈뼛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반응들은 동정심일까? 아니면 한탄일까?

그리고 서명운동의 외침에 반응하는 분들의 답은 “ 바쁘다. 시간이 없다. 전화 중이다. 할 일이 많다. 관심없다.” 등이었고 더 기가막힌 답은 “몇사람 서명한들 바꿔지겠습니까?” 그러니 서명못한다는 답변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핑돌았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 나라가 아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어 무덤덤함으로 그들은 침묵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격으로 이들을 비난할 것이며 이들의 황폐해진 마음을 무엇으로 보상하며 위로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는 각자 힘을 모아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올바른 주체성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국정화역사교과서를 주관한다 해도 형평성의 이치를 운운할 상황에 국민이 신뢰하지 못한 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질 역사교과서는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한 불신과 불명확한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다. 단 우리의 요구는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법도 행할 수 없다. 라고 세종대왕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았으면 한다. 벼슬아치에서부터 민가의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법(토지세법)에 가부를 물을 것이며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은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기에 그 당시 토지세금에 대한 세법을 만드는데 17년간 17만 2천8백6명에게 묻고 물었지만, 백성의 이해도 부족에 원하지 않았기에 내놓은 말씀이었다. 조선의 민주정치가 현재의 민주정치보다 탁월했음을 왜 모르는가?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 몸부림 친 많은 유관순 누나를 기억하는가?

해방의 순간 분단의 시간에 최대의 비극이 낳은 ‘가스 괴정병’이란 병원균에 감염된 포탄의 파편에 묻어 사람 몸속으로 뚫고 들어가 생기는 질환으로 살이 끓어 썩어들어가고 작은 빛과 미세한 소음에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극심한 고통을 가져온 6·25전쟁 후유증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하근찬의 수난이대’라는 작품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징용되어 두 팔을 잃은 아버지와 6·25전쟁으로 두 다리를 잃은 아들과의 상봉에서 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우리의 식민지와 전쟁 시기 우리 역사 속의 실제상황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친일파 옹호와 유신체제의 독재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묵인한 채 제대로 교육하고 반듯한 역사교과서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후손에게 얼굴을 보일 것인가?

이제야 그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 죄스럽게 생각하는 시점에 국정화 역사교과서 주관은 황당한 자체이다.

야당의 팽팽한 주장 속에 지도자의 덕목을 당부드리고 싶다. 첫째 나는 식견과 판단력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며 둘째 나누고 대화로서 소통의 능력을 갖췄는가를 생각하며 셋째 조직(공동체-학교, 기관, 단체,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물에 초연함으로 개인과 당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표정한 침묵으로 국정화역사교과서 서명 반대운동에 참여한 전주시민들의 바람은 전국민의 뜻이었음을 헤아려 추진되었으면 한다. 그들의 침묵에 귀 기울이고 살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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