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거짓말쟁이
모두가 거짓말쟁이
  • 나영주
  • 승인 2015.10.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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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드라마 <하우스>는 대학병원 진단의학과 의사인 하우스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단의학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알 수 없는 병의 원인을 탐색하고 밝혀 치료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하우스 박사의 지론은 ‘Everybody lies(모두가 거짓말쟁이)’인데, 사실 드라마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병명과 질환의 원인을 모르는 환자들은 하우스 박사를 찾지만, 그들 대부분은 불륜이나 마약 복용과 같은 치부를 숨긴다. 그러한 치부들이 질환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지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주인공인 하우스는 흡사 셜록 홈즈처럼 환자의 거짓말을 토대로 진실에 접근해 병을 치료한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종종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큰 병이 닥쳐 위기의 순간이 와도 치부를 숨기고 싶은 욕망에 의사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도 마찬가지다. 민사사건이든 형사사건이든 변호사를 찾아올 정도면 본인의 재산이나 신변에 큰 위기가 닥쳐온 것임에도 본인의 유일한 조력자인 변호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비밀엄수 의무가 있다고 몇 번이고 안심시켜도 유리한 사실만 말하고 불리한 사실은 감춘다.

변호사는 그런 의뢰인의 말을 믿고 소송을 진행하다가 낭패를 본다. 민사에서 상대방이 의뢰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밀 때, 형사에서 수사기관이 혐의 입증의 결정적 증거를 보여줄 때 변호사는 난감한 처지에 빠진다. 그때서야 의뢰인은 멋쩍게 말한다. “변호사님, 사실은 거짓말이었어요.”

수사기관에 의뢰인이 결백하다고 항변했더니 담당 수사관에게 “변호사님에게 의뢰인의 이익이 최선의 목표지만, 그래도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판사와 검사의 의무와 변호사의 의무를 혼동한 말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호사에게도 진실을 대면할 책임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실체적 진실을 대면할 책임과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는 상충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다. 진실을 알아야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래도 일단은 의뢰인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 믿었던 의뢰인에게 불의타를 맞으면 기분이 나쁘다. 의뢰인을 책망해서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의뢰인에게 그만큼 내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아가 변론에 있어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한 만큼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의뢰인과의 상담 시 최대한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의뢰인에게 집요한 질문을 하는데, 이럴 경우 ‘내 편인 변호사도 나를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쾌해하는 의뢰인도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해 의뢰인의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변호사도 이러할진대,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판사나 검사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릴 때마다 무엇이 진실인지 타임머신을 타고 사건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들이 더 할 것이다.

더구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탐색하다 보면, 모두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모순적인 결론이 내려지기도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처럼, 당사자 모두가 자신의 기억에 의해 구성되는 사건의 내막은 모두에게 있어서 진실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분쟁의 해결이라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법의 영역이 흡사 철학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일까. 거짓말 탐지기 검사(물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증거능력이 없고, 단순히 참고자료에 불과하며 100% 정확한 것도 아니므로 중요하지는 않다)를 받으러 가는 의뢰인에게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와 같은 멋진 말을 해주고 싶지만, 잘 받고 오라는 격려 정도만 하게 된다. 의뢰인을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사건의 진실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모두가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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