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갑질문화
도덕과 갑질문화
  • 안 도
  • 승인 2015.09.17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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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사람에게 ‘스스로 주인 될 권리(自主之權)’를 주었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의 말이다. 현대인에게 각자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급속한 사회변화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반성하는 여유까지 상실하고 있다.

요즈음 직장인들은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셀 수 없이 시계를 본다. 시간이 충분한데도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PC로 작업할 때도 속도를 꽤나 의식하는 편이다. 즉 시간에 대한 일종의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여유를 잃어 가면서 가치의식도 함께 잃어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추구될 만하며, 무엇이 거부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중시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신념이 불확실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개인들에게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나타나고, 사회에 있어서는 공동생활의 기본이 되는 규범들에 대한 불일치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 구조가 분화되고, 이익 집단이 보다 많이 형성됨에 따라 개인과 집단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이제 더 이상 도덕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의한 도덕적 자각과 실천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대표적인 현상이 갑질문화로 나타나며 사회 전반에 퍼져 가는 양상이다.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나 쓰던 ‘갑을(甲乙)’은 그동안 계약서에서나 보던 낯선 용어였지만 이제 우리 사회 내 강자가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행위를 요구하는 대표적 명사가 돼버렸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이들 갑의 변명은 하나같이 유사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누군지 알아?”, “나도 피해자야”. 내가 부사장인데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직원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것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고, 내가 돈 내고 물건 사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 채 갑은 갑대로 억울해하고, 을은 을대로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갑’이 될 수도 때로는 ‘을’이 될 수도 있다. 재벌가나 사회 기득권층이 아니더라도 음식배달원, 건물청소부, 가게점원, 고객센터상담원, 아파트경비원 등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당연하게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요구하게 한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를 경우 ‘갑’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열화하다 보니, 나보다 약해 보이면 ‘갑’이 되고, ‘갑질’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결국 너와 나는 다르고, 누가 더 ‘갑’인지 판단하는 사회 인식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질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식도 문제다. 갑질문화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마녀사냥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갑질문화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사회에 불신과 분노가 쌓임으로써 사회의 건강을 해치고 사회의 긍정적 에너지가 약화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개인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해도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성이나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면 개인의 그러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회의 전체 구조가 잘못되어 있는데, 개인에게만 올바른 삶을 살아가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개인에게 선하게 살아가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선 잘못된 사회적 관행이나 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여가를 즐기는 과정에서 더 많은 쾌락을 얻는 것과 쾌락을 가져다주는 물질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는 믿고 있다. 하지만 쾌락과 물질적 풍요가 행복이 아님을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몇 년 전 영국의 한 대학이 54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 조사를 한 결과, 방글라데시가 1위를 차지하는 등 가난한 나라가 상위권에 속한 반면. 우리나라는 중위권을 유지하였으며,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는 행복의 요인이 물질적, 쾌락적인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이웃과의 끈끈하고 친근한 인간관계 그리고 도덕적, 정신적 자양분이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서로 상생하며 살아간다. 상생의 질서는 사회정의다. 사회정의는 사회의 목표이고 사회의 선(善)이 된다. 아무리 각박한 사회라도 사회의 선(善)이라는 가치관은 잃지 말자.

안도<시인/전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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