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헤어진 오빠 좀 찾아줘요”
“60년 전 헤어진 오빠 좀 찾아줘요”
  • 설정욱 기자
  • 승인 2015.09.0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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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신청한 홍정희(78) 할머니

올해로 일흔 여덟 살이 된 홍정희(78) 할머니는 오빠와 헤어진 지 6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얼굴을 또렷이 기억해내며 2일 전북적십자사를 방문,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신상기 기자>
“오똑한 콧날에 잘생긴 얼굴, 키도 크고 넓은 어깨를 가진 늠름한 오빠였지. 나를 무척 아껴줬는데….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올해로 일흔 여덟 살이 된 홍정희(78) 할머니는 오빠와 헤어진 지 6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얼굴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어느덧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에 자식과 손자들까지 본 홍 할머니지만 그리운 오빠 이야기를 할 때면 수줍은 보통 여동생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최근 남북 고위급 회담 타결로 이산가족 상봉이 추진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대한적십사에 이산가족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홍 할머니가 이날 오전 전북적십자 사무실을 찾아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어서 머리를 곱게 빗질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홍 할머니는 신상명세서에 오빠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가며 그날의 기억을 되새겼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어렸을 적 살았던 주소와 헤어진 날, 그리고 오빠와의 추억을 마치 어제 발생한 일인 양 또렷하게 기억했다.

홍 할머니는 “오빠 이름은 홍동식(83)이고, 어렸을 적 이리시 익산군 금마면 신용리에 살았지. 오빠와 나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각자 하숙집에서 생활했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전쟁통에 난리가 났을 당시 중학교 6학년이던 오빠가 하숙집으로 가던 중 민학 학생들에게 붙잡힌 거야. 그리곤 북쪽으로 보내졌다는 소식과 함께 다신 볼 수 없었어…”라며 붉어진 눈시울과 함께 잠시 말문을 멈췄다.

어린 나이에 아픔을 겪고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다 됐지만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하나는 60여 년의 세월도 막지 못했다. 살아생전에 오빠 얼굴 한번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며 적십자 직원들의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홍 할머니는 “내 나이가 벌써 여든이 가까워졌고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셨어.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용기 내서 이산가족 신청을 한 거야”라고 말했다.

홍정희 할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6남매를 키우면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오빠까지 잃은 뒤 식음을 전폐하다가 결국은 30년 전 위암으로 돌아가셨어”라며 “어머니도 눈 감는 그날까지 오빠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는데 내가 그 한을 풀어 드렸으면 좋겠건만…”라고 입술을 꼭 깨문다.

홍 할머니가 올해 처음으로 이산가족 신청을 위해 적십자로 발걸음을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얼마 전 탈북자가 쓴 책에서 오빠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홍정희 할머니는 “어느 탈북자의 책에서 탄광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런데 익산 출신 홍동식이라는 사람과 같이 탈출을 시도했는데 자신은 성공하고 오빠는 실패했다고 쓰여 있더군. 얼마나 고향에 오고 싶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했을지, 이후 고초를 겪지나 않았을련지 너무 걱정돼”라고 말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접수를 마친 홍정희 할머니는 “이번 추석에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수만 있다면…. 이게 남은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한편, 전북지역 이산가족 상봉 희망자는 방문 및 인터넷 접수를 받고 있어 이번 이산가족 상봉까지는 15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한적십자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대비해 세부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적십자 실무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일정을 합의하고 인선위원회 개최, 생사확인 의뢰 작업을 거친 뒤 최종 명단이 확정, 최종 명단에 포함된 남북 각 100명은 정부합동지원인원 교육을 받고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할 계획이다.

설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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