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신정일의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5.09.0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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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옛길, 그 곳에 얽힌 인문학적 보고

 이 땅의 강과 산 그리고 5천 년 역사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옛길을 걷고 또 걸은 문화사학자이자 작가, 도보여행가인 (사)우리땅 걷기모임 신정일(61) 대표.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걸었으며, 4백여 개의 산을 오른 그의 발자취는 따라가기에도 숨이 찬다.

 전국의 구석구석을 다니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게 걸으면서 꾹꾹 눌러담은 이야기들을 글로 토해내고, 6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쓴 그의 활동 영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뿐이다.

 그렇게 한반도 곳곳을 누빈 터라 그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길도 없을테지만, 최근 펴낸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신아출판사·2만원)’에서는 전라북도의 옛 길과 그 곳에 얽힌 인문학적 보고를 담아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너무도 가까이에 있어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그 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책은 각각 ‘역사’ ‘사찰’ ‘길’ ‘자연’으로 나눠 전북의 옛길을 따라 걸은 흔적을 남겼다. 긴 대표는 그 길 위에 서서 어느 순간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인문학적 보고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역사 속 그 길에서는 신 대표만의 마음 속의 명당을 찾아 나선다. 남원 교룡산성에 남은 최제우의 흔적, 후백제의 도읍지 전주성에 남은 자취, 허균과 유형원이 살았던 변산의 우반동, 진안 천반산에서 금강을 바라본 정여립 등 그의 정신을 일깨우고, 그를 세워준 비밀의 길을 소개한다.

 사찰의 길에서는 한 걸음 더 천천히 걷는 모습이다. 신 대표는 완주 화암사의 흩날리는 꽃비에 취해도 보고, 내변산에서 내소사 가는 길을 걸으면서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라는 조선 중기 문장가 허균의 글을 떠올렸다. 석탑을 복원하느라 어수선한 미륵사지에서는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남겼다.

 이 밖에도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어떤 집을 짓고 살 것인가 등 인문학에 발을 들인 일반인이 궁금해할 질문에서부터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 영화처럼 그 길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인물의 모습까지도 꼼꼼하게 추려 담아냈다. 저 마다의 특색을 지닌 옛길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길에 이르기까지 길과 길, 그 속에 깃든 사회, 문화, 역사, 개인사까지를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특징이다.  

 신 대표는 “세상이 아무리 척박하고 어렵고, 아무리 실용학문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문학, 역사,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든든한 기초를 제공하고 굳건하게 서 있어야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길 위에서 만나는 인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화수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길을 걷다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길 위에선 나그네는 큰 것보다 작고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면서 “인생길 자체가 말 그대로 고행이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길을 나서는 것은 그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없는 즐거움이다”고 설명했다.

 개발과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불어 닥친 걷기 열풍. 그러나 제대로 걷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 그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늘 이와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나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나는 ‘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길 위에 있었고, 지금도 역시 길 위에 있다”라고…. 그리고 그는 프랑스 철학자인 사르트의 의미심장한 글을 곱씹을 터다.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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