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철 교수의 죽음을 바라보며
고현철 교수의 죽음을 바라보며
  • 김현수
  • 승인 2015.08.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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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밤늦게 서울 출장을 마치고 복귀한 필자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피곤한 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는 생각으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몸서리치듯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필자를 경악케 한 소식은 부산대학교 국문학과의 고현철 교수가 교육부가 지난 몇 년간 강압적으로 몰아붙인 대학 총장 직선제 포기에 항의하여 대학본부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시작된 교육부의 총장 직선제 폐지 시도는 현 정권에서도 꾸준히 이루어졌고, 현재는 대부분의 국립대학이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하고 있는 실정이며 도내 거점국립대학인 전북대학교도 작년 12월 첫 간선총장이 취임하였다. 교육부의 논리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그동안 총장 직선제로 총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 특히 파벌조성 등으로 인해 선거 분위기가 지나치게 과열되어 연구 분위기를 해쳤기 때문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직선제를 원하는 국립대학 교수들은 대학 민주주의와 독립성을 위해선 총장 직선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란 주권국가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정치, 사회적 갈등을 목도 하였다. 중공업 위주로 소수의 재벌들에 의해 주도된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은 모든 것이 집중을 통한 효율성 제고에 맞춰져 있었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 부의 재분배 등을 이야기하면 국가발전을 저해하려는 불온 세력으로 치부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화, 또는 정의를 알리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목숨을 버린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은 근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면서 대학교수에 의한 투신자살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교수집단 구성원들의 보신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다양한 사회적 채널을 유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쉽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 결정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고, 교수 목숨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다고 말할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이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심각한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다.

매년은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이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교우관계의 문제 등으로 소중한 목숨을 버렸다는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한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거의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정되지 않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내는 청소년들에게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54세의 대학교수에게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면 과연 우리 사회 시스템은 건전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필자 역시 국립대에 재직 중인 상황에서 정부 또는 교육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틀리고, 교수들이 주장하는 것은 항상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육부는 그동안 대학의 개혁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제대로 듣고 소통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고현철 교수의 유서에는 자신의 행동을 무엇을 해도 귀를 열지 않는 교육부와 대학본부측에 대한 충격요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 그 두려운 선택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의견을 알려야 했던 한 교수의 죽음을 목도하며 태연히 ‘직선제는 여전히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의 수렴을 통한 합리적 해결책을 도출할 방법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김현수<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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