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속의 카나리아
탄광 속의 카나리아
  • 권익산
  • 승인 2015.08.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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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조선인8.15 광복은 한반도에 살던 한국인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 온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제 일본제국주의와 친일부역자를 몰아내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만 남았다.?한반도에서 해방을 맞은 이들과 다른 고민을 하나 더 가지게 된 사람들이 있었으니 해외동포들이 그들이다.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에게도 해방의 기쁨과 함께 고민이 하나 생겨났다.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일본에 남을 것인가?

해방이 되었으니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왔거나 홀몸으로 온 사람들은 결정이 쉬웠다. 하지만 이른 시기에 일본에 건너와서 결혼도 하고 일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에게 귀국은 마치 서울에서 어렵게 직업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 만큼이나 고민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데 이제 막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가난한 조국에 돌아간들 일자리라도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이들의 대부분은 일제의 식민지배로 한국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들이었다. 고향에 돌아간들 장사할 밑천도 농사지을 땅 한평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거기에 더해 조국에서서는 갈수록 안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삼팔선이 그어지고, 남과 북이 분단되어 두 개의 나라가 세워지더니 마침내 6.25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이렇게 하여 일본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은 재일조선인이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자식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삶을 이어가던 재일조선인에게 일본 정부가 한 일은 1947년 외국인등록령을 제정하여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당부간 외국인으로 취급한다는 발표였다. 그때까지 재일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1947년 당시에는 아직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이어서 재일조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국적은 없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자 최종적으로 재일조선인의 국적을 박탈한다고 선언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정식으로 국교를 재개하는 1965년까지 20년간이나 재일조선인은 일본에 거주하지만 어느 나라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어 부상당한 사람은 원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일본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다 원폭 피해를 당한 사람도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재일조선인은 납세 등 주민으로서의 의무는 일반 일본인과 똑같이 부담하면서도 일본 정부의 공무원이나 교사로는 취직 할 수 없었다.?뿐만 아니라 공영주택에 입주할 수도 없어 대부분 가난한 동네에 살아야 했으며,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아프면 훨씬 많은 병원비를 지출해야만 했다. 한국인이 가는 곳이면 제일 먼저 만들어 왔던 학교도 1948년 일방적으로 폐교당했다. 한신교육투쟁 이후 재건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정식 학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민족학교는 일본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해 수업료만으로 학교를 운영해야 하고, 졸업을 해도 국립대학에 지원할 자격을 주지 않았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면서 재일조선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서경식은 자신을 탄광 속의 카나리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옛날에 탄광의 광부들은 산소 부족을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갱도에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산소가 부족할 경우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 위험을 알린다. 식민 지배의 역사 때문에 생겨난 재일조선인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고통받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재일조선인을 비롯하여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배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일본이 한국에 사죄하라는 거냐라고 말하거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카나리아가 죽으면 갱도 안의 사람도 곧 죽는다.


 권익산 원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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