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효자
국민연금이 효자
  • 조상윤
  • 승인 2015.06.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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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노모가 먹고 싶다는 산딸기를 구하기 위해 한겨울 산중 눈 속을 헤매는 효자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돈만 있으면 사시사철 어느 때나 먹고 싶은 것을 구할 수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KDI 연구원의 노부모 부양에 관한 책임의식 변화에 관한 자료가 모 일간지에 실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회조사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노부모를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은 2002년 70.7%에서 2014년 31.7%로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가족과 정부, 그리고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은 같은 기간 18.2%에서 47.3%로 크게 상승했다. 이와 더불어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9.6%에서 16.6%로 늘었고, 가족이 아닌 정부와 사회가 노인 부양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4.4%나 되었다.

 요즘 혼담이 오갈 때 부모님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지를 묻는다 한다. 물론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는 것이겠지만, 그 보다는 노부모를 부양해야 할지도 모를 심적·물적 부담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담긴 물음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나오고 화려한 스펙을 갖추어도 취업이 어렵고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마저도 그리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이를 야박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녀를 통해 이루어지던 노부모 부양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부모(노인) 부양의 한 축을 감당하려고 도입한 제도가 바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이 현 노인세대의 궁핍을 직접적으로 완화?해소하기 위한 제도라면, 국민연금은 노후에 곤궁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개인이 스스로 미리 준비하도록 돕고자 하는 제도다.

 베이비붐 세대를 끼인 세대, 즉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로부터 부양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그런 시대다. 늦어지는 취업과 빨라지는 퇴직, 그래서 점점 줄어드는 경제활동기간, 그 짧은 기간 동안 자녀를 양육하고 스스로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라고 한다. 불로장생을 꿈 꿔왔던 인류로서는 반겨야 할 기쁜 소식임이 분명한데 어떤 사람은 장수를 리스크라고 말한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거리요, 위험한 거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아마도 오래 사는 것 자체가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채로 오래 살까봐, 아무런 소득 없이 그리고 할 일 없이 은퇴 후의 삶을 살게 될까봐 길어진 노후가 염려스럽고, 그러니 미리 준비하라는 뜻이리라.

 은퇴 후 삶이 나머지인생(餘生)이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라면 이 새로운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2013년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약 85%는 노후준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노후준비는 많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노후준비가 말처럼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연금공단에서는 각 지사에 행복노후설계센터를 두고 국민들에게 노후준비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진단지를 활용하여 노후준비 정도를 측정하고 재무·건강·여가·대인관계 등 영역별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종합적인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노후준비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이 시행되는 연말쯤에는 행복노후설계센터를 대신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지역노후준비지원센터를 통해 보다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젊은이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다. 더 이상 자녀에게 효(孝)를 부담지울 수 없다. 국민연금은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를 잇는, 세대와 세대 간의 부양에 관한 약속이다. 효(노인부양책임)는 이제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찾자. 어느 연금 수급자가 그러셨다. “국민연금이 효자야!”

 <조상윤 국민연금공단 진안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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