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지진피해 긴급구호 현장에서의 단상
네팔 지진피해 긴급구호 현장에서의 단상
  • 이병화
  • 승인 2015.05.20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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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5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 77km 지역에서 강도 7.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여느 재난의 경우처럼 참 안되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네팔의 지진을 남의 일로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분위기가 짙어 가더니만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긴급구호품을 전달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나를 비롯하여 방문자가 결정됨과 아울러 긴급구호품 등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상황이 진지해졌다.

네팔과 우리나라는 1969년 5월부터 영사관계를 수립한 후 1972년에 영사관을 설치하고 나서 1974년부터 대사관으로 승격하여 2014년 4월부터 16대 대사가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체류자는 650여 명이고 연간 3만여 명이 10일 또는 14일간 체류하며, 댐 건설과 관련된 삼부토건과 대한항공 등의 회사가 주재하고 있단다. 특히 다른 나라와는 달리 2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하나의 교회를 세워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단다. 1차로 4월 25일에 있었던 지진과 관련하여 한국인 부상자는 3명이었고 정부에서는 100만U$를 지원함과 아울러 4월 28일 오후 5시에 긴급구호대(탐색구조팀 10명, 선발대 5명)가 카트만두 인근 동쪽 지역에 파견된 후 나머지 대원 30여명은 5월 1일에 파견되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진피해자들에게 가장 긴급한 물품이 무엇인가를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구호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단체인 재난 대책본부에 물었다. 그들은 쌀과 물을 요구하였다. 쌀은 현지에서 구입하여 배포하기로 하고 쌀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송금하였다. 그리고 물 문제 해결을 도와주기 위해 간이 정수기를 구입하였으며, 정전으로 인한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태양광 랜턴을 구입하였다. 지진으로 인하여 문명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을 수 있고 오염된 식수로 인한 2차 피해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5월 4일 현지에 도착하여 간이 정수기와 태양광 랜턴을 재난대책본부에 전달하였다. 그들이 현지 사정과 피해 정도 등을 감안하여 무난하게 배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5월 5일 오후에는 카트만두 북서쪽에 위치한 지진의 진원지였던 고르카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카트만두에서 150km 지점인데 큰 산을 두서너개나 넘어서 그런지 6시간이나 걸렸다. 카트만두 시내뿐만 아니라 고르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보니 무너진 집은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았다. 재료로 무엇을 썼느냐에 따라 지진 이후에 다른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 다음날 새벽 6시에 도착하기로 한 쌀이 소식이 없기에 숙소 인근 지역을 탐사하였다. 길도 멀쩡하고 산도 이상이 없는데 많은 집들은 무너졌거나 벽이 갈라져 무너질 위험에 놓여 있었다. 집들도 가파른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산재하여 있었다. 정말 그러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행복지수가 세계최고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마을에 이르니 교회로 사용하던 건물이 반파되었다. 사연인즉슨 4월25일 토요일(이곳은 휴일이 토요일이다) 오전에 예배를 마치고 다음 주 예배를 위해 율동을 준비하던 중(11시56분) 지진이 발생하여 신속하게 밖으로 나왔기에 인명피해는 없었단다.

결국, 오전 6시에 오기로 했던 쌀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도착하였고 소형 덤프트럭에 옮겨 실어 또다시 3시간을 달려 가파른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골 마을에 도착하였다. 집들이 산속 깊은 곳에 드문드문 있고 교통도 고르카 시내에서 하루에 1번 왕복하는 버스편이 유일한 지역이다. 거기서도 한국에 와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어 우리들을 도왔다. 한가정마다 쌀 1포대씩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쌀 한포대보다 이억만리 먼 곳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다시 구불구불한 산골길을 덤프차를 타고 온 우리들의 마음에 더욱 감사하는 듯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온 단체는 카트만두에서 헬기에 구호품을 싣고 와 고르카 시내에 내려놓고 그냥 간 것도 보았고, 네팔 경찰부인회에서도 구호물품을 고르카 인근지역에 전달하고 되돌아간 사실을 아는 그들이다. 그들에게 구호품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면 우리들도 그러한 방법을 택했을 것이지만 쌀이라는 육신의 양식을 전달하는 것을 계기로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웃사랑을 전하겠다는 현지 선교사들의 기대와 요청을 따랐던 것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집이 무너졌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들 나름대로 낙천적인 마음과 자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고 농작물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 다소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지진이라는 고난이 그들에게 연거푸 이어지고 있지만,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지나가는 한 순간순간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엄청난 재난을 당했지만, 천막으로 하늘을 가리며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자연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였다. 삶의 수준과 인생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감의 관계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병화<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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