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의 인정 범위 제고되어야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 제고되어야
  • 황경호
  • 승인 2014.11.06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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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나타난 괴한이 돈을 요구하며 폭행하더라도 상황을 보아가며 대항해야 할 판이다. 자칫 필사적으로 대항해 괴한을 때려눕히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새벽에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최모(20) 씨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을 두고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최씨에게 도둑이 흉기도 없고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는데도 과잉방위를 해 상대를 뇌사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이후 판결이 너무 과하다는 여론과 함께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요건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최씨의 사건을 한 번 되짚어보자.

 20세의 청년은 새벽에 귀가했다가 장롱을 뒤지고 있는 도둑과 마주쳤다. 얼마나 놀라고 두렵고 당황했을 것인가. 순간적으로 집안에 있던 가족의 안위가 제일 먼저 떠오르며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청년은 도둑과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상대를 제압했지만, 불행하게도 정당방위 지침을 알지 못했다. 결국, 가해자가 되어 실형을 받게 된 것이다.

 현행 형법 21조에는 정당방위에 대해 자기나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벌하지 않으며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고 그런 방어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내용만으로는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법을 실제 운용하는 과정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알 수 있는데 경찰의 쌍방폭행 정당방위 처리지침에는 △누군가 나를 해치려 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 △먼저 도발하지 않을 것 △먼저 폭행을 하지 않을 것 △폭력이 침해행위보다 중하지 않을 것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을 것 △침해행위가 끝난 뒤에는 폭력을 멈출 것 △상대방 피해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3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을 것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지침을 고려할 때 피해자는 괴한이나 도둑과의 다툼 중에도 상대의 상처부위를 살펴가며 완급을 조절해야 할 판이며 차후 진단서 발급 시 3주 이상이 될 것 같은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임은 물론 자신이 상대한 도둑이나 범법자가 많이 다쳤다고 징역을 산다면 누가 타인을 위해 도둑이나 소매치기, 강도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지난 2012년 2월 26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자경대원으로 지역을 순찰하던 짐머만은 편의점에서 17세의 흑인 소년 마틴과 말다툼을 벌이다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짐머만은 마틴이 먼저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살해 위협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짐머만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살인 등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숨진 마틴은 짐머만의 주장과 달리 티셔츠 차림에 음료와 사탕만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당방위 범위를 넘어 인종차별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선진 각국에서는 정당방위 요건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공권력 행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즉 엄정한 공권력이 강력한 정당방위를 지켜주지 못하면 사회는 불안해질 수 있는데 이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모든 범죄를 공권력이 온전히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개인의 정당방위를 폭넓게 담보해주지 않는다면 사회기강은 약해지고 범죄는 활개를 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통 일반인이 한밤중에 자신의 집안이나 길거리에서 괴한을 만나게 된다면 대항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완전히 쓰러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도주하거나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능한 모든 공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여성이라면 성폭행에 대한 공포도 느낄 수 있고 힘으로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흉기를 들고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야간이나 위급한 상황 또는 성폭행이라든가 정말 부당한 침해 상황에서도 정당방위에 대한 범위를 너무 좁게 제한해 버리면 자칫 불법이나 보호하지 말아야 할 법익이 선한 보호 법익을 침해하는 우를 범하기가 쉽다.

 이번 최씨의 판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무죄 76.2%, 유죄 10.9%) 역시 이러한 우려를 반증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억울한 시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분화되고 현실적인 정당방위 요건에 대한 숙고가 정말 필요한 때이다.

 황경호<전주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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