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백일장 당선작 ‘기억 저편에 살아있는 사랑’
여성백일장 당선작 ‘기억 저편에 살아있는 사랑’
  • 신영란
  • 승인 2014.11.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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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이리 내. 우리 원배오면 먹을 것이란 말여.”

 노인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치매 환자들이 있던 병실을 정리하던 간병사님이 일명 ‘원배할머니’라 불렸던 환자의 침상 이불 속에서 밥한 그릇을 발견했다. 언제 넣어 두었는지 밥은 이미 상하고 위에는 곰팡이까지 끼어 있었다. 이를 버리려는 간병사님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원배할머니 간의 한바탕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서 내놓으라는 위 말은 결국 간병사님에게 밥을 빼앗긴 원배할머니의 외침이다. 아들 이름이 원배였고 밤이 되면 병원 창밖을 보며 “원배야”라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시곤 해서 원배할머니라 불리었던 그 환자는 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상한 밥을 간병사에게 빼앗기고 나면 그렇게 외치곤 하셨다.

 아들 원배가 오면 먹여야하니 돌려달라고. 그 모습이 어찌나 격렬한지 절규에 가까웠다.

 다시 밥을 해서 따뜻한 밥을 드릴 테니 원배 오면 따뜻한 밥으로 주자고 말씀드리면 “그려 얼른 해와. 꼭 갖고 와야 혀” 라는 다짐을 받으신 후에야 밝아지셨다. 원배할머니와의 그런 싸움은 반복되곤 했다. 식사 때가 되면 원배할머니는 다 드시지 않고 절반정도 남겨 이불 속에 넣어두시곤 했기 때문이다.  

 92세 된 그 할머니는 배불리 먹지 못했던 시절, 난방시설이나 보온기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아랫목 이불 속에 밥을 묻어 두었다가 저녁 늦게 귀가하던 아들에게 먹이셨던 그 시절에 살고 계신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그래서 많은 것을 잊고 계시지만,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밤 늦게 돌아오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었던 지극한 사랑의 마음이 여전히 기억 한편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들 원배가 오면 알아보지 못하신다. 당신을 찾아온 아들을 마치 자신이 아닌 옆 환자를 찾아온 전혀 모르는 사람인양 멀뚱히 쳐다보신다. 당신 앞에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남자의 시선이 어색한지 정색하시며 “누군디 나를 봐요?” 라고까지 하신다. “할머니 원배가 왔잖아요. 엄마가 보고 싶어 왔대요.” 라고 하면 여전히 낯선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여기저기를 훑어보신다. 기분 좋으신 날이면 간혹 할머니를 찾아온 아들을 가리키며 우리 아들 원배라고 하시며 아들 손을 잡고 활짝 웃으신다.  

 자신을 알아보실 때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 때도 그 아들의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가는 젖어있다. 그럴 때면 아들에 대한 할머니의 지극하신 사랑이나,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애틋한 사랑에 절로 숙연해지곤 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때쯤이면 더욱 생각나는 원배할머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친정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신 영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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