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4.10.13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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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25.

 하나의 추억은 서로에게 다르게 기억된다.

 그 날의 날씨나 기분도 영향을 미칠 테지만, 우선 사람은 자기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보고 느낀 것을 각인시킨다. 사랑하던 남녀가 헤어진 후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조금씩 다르게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자기중심적 각인이 한 몫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도 이기적인 자기 위안의 다른 형태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나의 사랑을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따로 풀어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는 그런 기억의 속성과는 조금 다르게, 헤어진 남녀의 일상과 10년 후의 약속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 약속은 남자와 여자에게 공평하게 기억되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없던 그 시간들로부터 서로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 연결고리로써 존재한다.

 밀라노의 보석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아오이’에게는 미국인 남자친구 마빈이 있고 그녀는 친구들과 소소한 파티를 즐기며 한적한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안정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은 아오이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은 봉인된 사랑의 옛 추억으로 어둠의 그늘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포장된 일상들은 마침내 균열이 생기고 그녀는 10년 전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연인들의 성지’라 불리는 피렌체의 두오모로.

 피렌체에서 고미술품 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남자 ‘쥰세이’는 10년전, 헤어진 연인 ‘아오이’와 그녀의 서른 번째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날 약속을 했지만 그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약속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오이와는 전혀 다른 여자 친구 ‘메미’와의 사랑도 있었지만 그녀와는 결국 헤어지고 피렌체를 떠났던 쥰세이는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 애인 메미, 여선생 조반나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두오모에 오르기 위해 다시 피렌체를 찾는다.

 두 주인공이 머무는 도시의 색깔들은 각각의 주인공들을 닮아있다. 시간이 멈춘듯 한 고도(古都) 피렌체의 쥰세이는 과거 아오이와의 사랑에 멈추어 있고, 고미술품 복원사로서 시간을 복원해내는 그의 손끝에 연결된 그의 심장 또한 여전히 아오이를 복원해 낸다.

 또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혼란의 밀라노에서 아오이 역시 현재와 과거의 사랑에 혼란스럽다. 그리고 두 사람의 추억이 공존하는 도쿄. 그러나 그들이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공간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다. 마치 그들의 현재처럼. 도시도 세월 따라 변하고 잊혀 지며 가끔 추억될 뿐이다.

 지금은 국내에서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가 한국에 처음 이름을 알린 작품이 바로 아오이의 이야기를 담은 ‘냉정과 열정사이-Rosso(레드)’이다. 여기에 일본 최고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 수상작가인 ‘츠지 히토나리’가 쥰세이의 이야기를 담은 ‘냉정과 열정사이-Blu(블루)’편을 각각 썼다. 서로 다른 두 권이 하나로 만나서야 온전한 이야기로 완성되는 이 소설은 두 작가가 2년여에 걸쳐 월간지에 릴레이로 써내려간 작품.

 같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지만 블루나 레드 한권만 읽어도 스토리 전개나 이해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왕이면 두 권 다 연이어 읽어보는 것이 더욱 풍성한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고,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켜 연재되었던 순서대로 각 챕터씩 나눠 읽으면 숨겨진 복선이나 남녀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들을 눈치 챌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음악으로 더 유명하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바라 보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함께 아오이와 쥰세이의 사랑에 더해진 선율이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결국, 아오이와 쥰세이는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10년 전 약속을 지켰을까. 그들의 사랑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러나 사랑한다면 그냥 그 순간에 충실하면 그만일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다만 그 순간이 기억될 뿐. 그러니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사랑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설령 사랑의 순간들이 서로 다른 기억으로 각인된다 할지라도 어느새 추억이 된 그 기억들은 삶의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추억은 기억보다 힘이 세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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