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담배 끊나봐라!
그런다고 담배 끊나봐라!
  • 김남규
  • 승인 2014.09.1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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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피운 지 30년이 넘었다. 몸에 밴 담배 냄새가 싫고 잇몸도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에 끊어 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담뱃값 인상에 맞춰 담배를 끊으라고 하니 괜한 오기가 발동한다. 한꺼번에 이천원을 올린다니 호주머니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협박에 못 이겨 담배를 끊는 모양새에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더구나 이번 담뱃값 인상이 금연정책을 가장한 서민증세라는 것이 빤한데 이참에 담배를 끊으면 정부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격이 되고 아무런 저항 없이 인상된 가격의 담배를 계속 피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참 곤란한 지경이다. 그래서 변명 거리를 찾았다. ‘담뱃값 인상으로 협박한다고 내가 담배 끊나 봐라. 세월호 참사로 꽉 막힌 가슴이 뚫리면 알아서 끊을 것이다’라고.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세월호 특별법의 수사권, 기소권 문제는 대통령이 결단할 일이 아니며 2차 합의안이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대통령인데 설마 자식 잃은 부모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대통령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통령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것이 바보짓이었을까? 대통령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유족들을 외부세력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민생법안을 처리도 못 하는 국회의원들은 세비를 반납해야 하며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외부세력의 정치적 이용물로 전락한 세월호 특별법-대통령 발목잡기, 민생법안 외면하는 야당-대통령 모독은 국민 모독-그러니까 세월호는 이제 끝내라는 것이다. 정교한 정치적 구도가 계산된 발언이자 대통령의 세월호 종결 지침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장기화할 것이다. 마음 둘 곳이 없다. 가슴이 먹먹하다. 5.18광주민주화항쟁의 진실을 알고 나서 분노했던 때와는 또 다르다. 80년대에는 분노를 희망으로 만들 수 있었고 어둠을 빛으로 밝힐 수 있었던 젊음이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야당이 있었다. 30년이 넘은 지금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손을 잡아주는 정치세력이 없다. 보수 집권세력은 정교해지고 조직적이지만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자발성에 의존할 뿐 특별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87년 6월 항쟁을 만들어냈던 ‘국민운동본부’ 방식은 아니더라도 뭔가 새로운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당이 바로 서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거 군사 쿠데타나 폭력 혁명 방식으로 권력을 바꾸고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닐뿐더러 국민들이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불신과 실망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보다 새정치연합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130석의 거대 의석을 갖고도 역할을 못하는 야당을 다시 고쳐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당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박대통령의 발언을 기회삼아 새누리당이 단독 개원을 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온다. 대통령이 국회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면죄부를 주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셀프 면책까지, 박근혜 정권의 끝이 어떠할지 정말 궁금하다.

 담배 끊으라고? 그래 국민 건강을 위해 저렇게 애쓰는 정부를 위해 7시간 정도는 끊어 주지.

 김남규<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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