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걸박사 회고록] 13. 처음부터 다시 근본으로
[백병걸박사 회고록] 13. 처음부터 다시 근본으로
  • 백병걸
  • 승인 2014.09.12 16: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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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공중보건학은 가축의 질병이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실천과학이다. 소 브루셀라병이 사람의 건강에 위해를 주고, 축산 농가에는 질병과 함께 경제적 타격을 주고 있음을 인식할 때 누군가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에서 나도 모르게 점점 미지의 블랙홀로 빠져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했다 싶을 만큼 국내에서는 관심도 없었고, 별다른 정보나 연구도 없었던 분야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소 브루셀라병의 퇴치를 위한 연구를 한답시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이방인처럼 홀로 서서 이해도 공감도 받지 못한 채 가는 세월만 아쉬워했다. 이 즈음의 내 심경을 읽은 이부웅 교수가 권유해 준 전북도민일보 편집실을 찾았다. 내가 내민 ‘우연’으로 이름 부쳐진 원고를 들여다 보더니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인데, 왜 수의학계와 교수님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의견이 없는 것입니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나, 정작 이제는 내가 오히려 되묻고 싶어진다. 무관심인지, 아니면 모르는 일인지를!

 나의 심상한 발걸음은 전주 솔내 천주교회의 서광석 요셉 신부님을 찾아 뵙고 엉긴 가슴을 풀어내며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왜! 과학자가 연구한 내용을 가지고 희생돼야 하고, 축산농가는 연유도 모른 채 같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그렇게 신부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셨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다. 소 브루셀라병 방역정책과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실상은 이렇게 하여 민낯으로 지역민들에게 알려졌다. 지금은 비록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에 브루셀라병 연구실과 예방 정책을 이끌어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글로서 술회할 수 있는 것 자체로도 홀로 벼랑끝 절벽에 서 있어야만 했던 나에겐 이런 호사도 없는 것이다.

 어느 주일 날, 사제관으로 들어서니 지역 국회의원님께서 이 일에 관한 것을 몇 가지 물으셨다. 그간 정읍시장은 물론, 장관, 대통령께 탄원 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예방용 백신은 없고, 백신을 사용해서도 안 되는 국가정책이라면서 축산농가를 막강한 힘으로 회유하는 현실도 그러하거니와 무력한 축주의 입장에서 안다고 한들 어찌하며, 더구나 공무원들은 대동 일치하여 정작 중요한 본질은 방치하고 발병두수가 수치상 이렇게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할 때는 어느 축산농가가 더이상 하소연 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천연두 백신 발명으로 지금은 마마자국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예전과 비교할 때, 곰보라는 낱말조차 생소한 것을 보면 과학이란 이렇듯 우리의 일상을 선하고 질서 있게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지난 50여 년간을 유지해온 진단·살처분 정책만으로는 퇴치되지도, 퇴치할 수도 없는 것이 극명한 사실이지만, 예방접종 정책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로 설명하는 것이 국제동물보건기구(OIE)의 규정이다. 브루셀라병 청정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의 유무에 관계없이)최근 5년 이내에 모든 동물에서 이 병이 발병되지 않아야 하고, 최근 3년간 예방접종을 한 실적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왜곡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잘라 말하면 우리나라는 진단·살처분 정책만을 해왔기 때문에 당초 청정국 지위를 획득할 수 없는 수의 역학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브루셀라병도 타 질병처럼 개체 자체의 면역력 없이는 100% 퇴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관계당국에 시정을 요구하면 “OIE 청정국 지위 획득 조건과 최근 소에서 감염두수가 현저히 감소하므로 예방접종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무슨 뜻으로 질문했는지는 알면서도 동문서답처럼 대답은 늘 한결같다.

 방향이 틀린 길이면 되돌아가야 한다. 간 만큼 더 목적지에서 멀어지므로 마음을 모으고 다시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단지 1~2만 원 내외의 검증된 백신 주사 한번으로 소는 평생을 브루셀라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도지사님! 이 점을 깊이 통찰하셔서 고통하는 농민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 전라북도에서만이라도 백신을 주사하여 민족의 한우를 지키고 어려운 축산농가에게 힘을 모아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백병걸<전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장> bbk25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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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s 2014-09-15 08:07:56
더디지만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곧 꼭 이뤄질것입니다.
무지한 자들이 깨닫고 무관심한 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