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20대 젊은이들의 또래문화 만들기
지적장애 20대 젊은이들의 또래문화 만들기
  • 고길섶
  • 승인 2014.09.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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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현장, 사람들을 보다 4.

교육 참가자들이 서로 협력해 공구를 이용하여 작업대를 만들고 있다.

 정읍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교육장에 도착했을 때는 교육 참여자들 8명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지적장애 3급 20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너와 나를 이어주는 휴먼 스토리 ‘내 사랑 내 곁에’” 교육 프로그램으로, 간식 주문에 대해 의견을 모아가고 있었다. 전수정 씨는 “선생님들이 사주는 간식만 먹었자나요. 앞으로도 참여자들이 정해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장혜란 씨는 “응, 좋았는데요, 옆에서 제가 도시락도 결정하고 전화로 주문도 하고 계산도 해보니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특히 계산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한다.

 참여자들의 적극성, 능동성, 사회성을 높이기 위해 이들에게 먼저 실험적으로 간식 구매를 직접 해보도록 한 다음 이에 대한 소감을 통해 차후 직접 구매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회의에서 결정된 바를 강사 유대수 선생이 정리하여 참가자들에게 재차 확인한다. “그럼 다음부터 간식을 우리 참여자 분들이 먹고 싶은 걸 결정하고 사먹는 걸로 결정하겠습니다. 뭐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참여자 분들이 본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한 것 같아 이렇게 결정하겠습니다.” 이 과정 또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교육방법이자 교육과정이다.

 지적장애 3급이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길래 간식 계산이 그리 힘들었을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지적장애 3급의 경우 경도의 지적장애로 자기 의사표현이 정확한 편이며, 한글 사용시 맞춤법을 다소 틀리는 거 외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며, 화폐를 사용하는 데에 익숙하단다. 감정의 기복도 심한 편이란다. 성장배경에 따라 개인차가 심하다고 한다. 수리적으로 보면, 두 자릿수 더하기 빼기 하는 정도. 실제로 이날 교육에서는 강사가 목공 도면 설계와 관련해서 200mm가 20cm임을 이해시키는 데 10mm=1cm라는 간단한 수식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돌려서 말하였다.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정읍시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거주하고 있으며 몇몇만이 집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가족 외의 일반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스스로의 자율적인 판단과 의사결정 경험이 부족하다. 삶의 태도가 수동적으로 고정된 측면이 커보인다. 이들 앞에 현실은 냉혹하기조차 하다. 교육팀은 작년에 지적장애인 1-3급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 진행 결과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으며, 그 냉혹함은 우리 대상자들에게 아픔으로 돌아왔다”고 토로한다. 그러함에도 참여자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적인 고독의 새로운 희망이랄까.

 이러한 성과를 이어 올해 교육대상은 지적장애 3급, 20대로 좁혔다. 이 정도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고, 사회참여를 통한 재활이 가능하며, 자기 의사표현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학업, 취업, 결혼, 이성교제, 친구관계 등의 현실문제들을 고민하게 함으로써 20대 청년들의 또래문화를 형성해보자는 취지가 고려되었다.

 교육팀의 “함께 한다”, “소통한다”, “공감한다”는, 원론적인 듯한 이 교육철학에는 참여자들의 세계와 욕망을 매우 절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업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이들이 가진 아픔과 슬픔을 함께 웃으며 지고 갈 ‘친구’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들과 한 데 어울려 사는 세상은 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줄까?”그래서 같은 또래의 비장애인들도 참여시키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비장애인들 또래는 처음부터 참여한 게 아니라 장애인 참여자들이 먼저 서로 익숙해지고 이들이 직접 공동작업을 통해 모집하여 참여하게 했다는 것이다.

 교육 참여자들의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는 기껏 1명, 2명, 3명이었다. 이들은 고창 청보리밭 여행을 하고, 취업 때 하는 이력서 작성이나 면접 체험을 하고, 친구 모집 대자보를 쓰고, 만들고 싶은 밥상 도면을 그리고, 목재와 톱과 전기공구를 이용해 작업대를 함께 만들었다. “틀리면 어떻게 해요?”, “뭘 해얄지 모르겠어요”라고 물으며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으면서도 이들은 낯선 세계에 뛰어들며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었어요.“ 이들의 핸드폰에 한 명이라도 더 친구가 등록된다면 이 프로그램은 성공이다. 아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성공이다. 소중한 경험과 소통과 공감, 그리고 변화가 있으면 말이다.

글·사진=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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