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것들
에볼라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것들
  • 김형준
  • 승인 2014.08.10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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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경 한강유역에 배치된 미군들이 갑자기 고열 등의 감기증상을 보이다가 신부전과 내부장기 출혈을 보이며 죽어가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고 미 군의관들도 처음 보는 이 질병에 ‘한국형 출혈열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붙이게 된다. 이후 이런 출혈열은 일본, 러시아, 중국뿐만 아니라 북미 인디언 사이에서도 오랜 기간 존재해오던 질환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그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 채 그저 그 지역의 풍토병 정도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던 중 1976년 우리나라의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 유역에서 포획한 들쥐에서 이 질환의 원인균인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동시에 이 병에 걸린 환자에서 같은 바이러스를 축출함으로써 한국형 출혈열(이후 유행성 출혈열로 병명이 정식으로 명명된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같은 형태의 유행성 출혈열이 들쥐 같은 설치류를 매개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 후 ‘한탄 바이러스’라 명명된 이 바이러스를 더 연구하여 예방백신도 개발하게 되고 항바이러스제 같은 치료약도 개발되며, 또한 들쥐 배설물에 의한 호흡기 감염이라는 전염경로도 역학조사로 규명되면서 다양한 보건활동을 통해 급속히 유행성 출혈열의 발병이 줄어들어 한때 50%를 넘어섰던 치사율이 현재 7% 정도의 치료 가능한 질환이 되었다.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같은 서아프리카 연안 국가들에서 에볼라바이러스에 의한 출혈열이 확산하여 세계 각국이 검역과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가 언론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방역당국도 아프리카 해당 국가 여행자와 입국자를 대상으로 잠복기인 3~21일간 추적 조사를 실시할 것이며 철저한 방역을 실시할 계획임을 발표하였다. 에볼라바이러스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6년으로 꾸준히 그 위험성이 의학계와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알려져 왔으나 이번처럼 역대 최대인 2천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또한 이들을 돌보던 미국인 의사 2명이 감염되어 서구 언론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에볼라바이러스에 의한 출혈열은 현재까지 예방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 같은 치료약이 없고 빠르면 발병 후 일주일 정도에 사망에도 이를 수 있으며 사망률이 70~90%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출입국시 검역, 방역을 위한 조치와 혹시 모른 발병을 위한 치료시설과 기관의 확보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며 국민들은 해당 국가 여행을 자제하고 혹 그곳을 방문한 여행자는 자진하여 검역에 협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면서 인터넷과 일부 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에볼라바이러스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확산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포가 확산하면서 급기야는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아프리카인들 전체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까지 일어나고 모 대학에서 있었던 아프리카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행사를 취소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던 점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앞서 설명한 유행성 출혈열처럼 정글에 서식하는 박쥐같은 동물 숙주를 통해 인간에 전염되고 인간 간에는 호흡기를 통한 감염이 아니라 체액이나 오염된 물건과 같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전염된다.

또한, 감염이 되어도 증상이 없는 잠복기에는 전염성이 없으며 증상 발현 후 전염력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때문에 환자와 아주 가까운 가족이거나 그들을 직접 접촉한 치료진이 아닌 경우 실질적으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대규모 감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수년 전 홍콩발 사스나 신종플루같은 공기매개 호흡기 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대규모 확산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 사태도 엄청난 인구가 밀접 된 수많은 아프리카 전제 국가 중 서아프리카의 해당 네 개 국가들에서 2천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뿐이다.

또한, 알다시피 해당 국가들의 국가보건과 생활위생시설, 의료 등을 종합해 볼 때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앞서 높은 치사율도 실제 에볼라바이러스의 치명성이라기보다는 사후 대처와 치료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해당 국가의 낮은 보건의료수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조기에 적절한 대증치료로 완치된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사태가 서방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 일으켜 해당 국가들을 인도적으로 돕고 또 에볼라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 ‘한탄 바이러스’의 예처럼 수년 내 에볼라바이러스 퇴치에 대한 획기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에볼라바이러스 자체의 문제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근거 없는 정보에 의한 지나친 공포와 이에 따른 반인종적 편견으로 이에 대해 철저한 대비는 하되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차분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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