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
  • 이용숙
  • 승인 2014.06.24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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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어느 기관에서 시행하는 ‘인성 훈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려 유형의 훈련 중 가장 인상적인 한 과정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강사는 참가자 모두에게 백지 한 장씩을 나누어주고 잠시 눈을 감게 하고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찾아 적으라 한다. 지역이건 직장이건 주변에서 내가 싫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다음 내가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까닭을 조목조목 적으라고 했다.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성이 있고 지나치게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이며 또는 이중인격?비양심적?무책임 등등, 그의 비행을 꼬집기에 열중이었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당신이 그를 미워하는데, 그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를 묻는다. 그래 당연한 일이다. 그도 분명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모두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항상 정직하고 순수했으며 양심적이고 협동 봉사했는데, 왜 나를 싫어할까? 나는 언제나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책임 있게 행동했는데......

그 강사는 조금 전에 적어내려간 ‘내가 그를 미워한 까닭’들이, 모두 그가 나를 싫어하는 조항들이란다. 그러면서 인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천부당 만부당한 일. 나는 진실했는데, 나는 모범적인데, 나는 겸손하고 순수했는데. 그래도 눈을 감고 깊이 성찰하며 그 모든 사실들을 인정하란다. 그게 아닌데! 어불성설 나는 질책받을 짓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단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 가느다란 흐느낌과 함께 그 사실들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너도 나도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자신의 오만과 독선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렇다. 그 모든 잘못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 그 바탕에는 나의 독선과 이기적인 마음이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내 탓이 아니던가. 모두가 제 탓입니다.
 
 ○ 모두가 제 탓 입니다.

공자는 ‘군자(君子)의 길’을 묻는 제자에게 “이책인지심으로 책기하고(以責人之心 責己), 이서기지심으로 서인하라(以恕己之心으로 恕人)”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남의 허물을 책망하는 데는 날카롭고,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너그럽다. 공자는 그와 같은 마음을 돌려 남의 잘못은 너그럽게 포용하되 자신의허물은 준엄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라고 타이른 것이다. 그것이 곧 군자?선비의 도리인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사십삼 년을 넘게 교단에 몸담고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많은 은혜를 입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누렸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허물도 그만큼 쌓였으리라. 그래서 후배 교수들이 정년기념으로 엮어준 시선집 표제를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로 하여 펴낸 바 있다.

그 긴긴 세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자들과 만났다. 학교도 중학교?고등학교?전문대학?4년제 대학교를 두루 거쳤다. 그 중에서 어느 때 어떤 제자들이 보다 소중한가 하는 물음을 가끔 받는다. 머리가 좋은 학생?착한 심성?고운 아이?성공가도를 걷는 사람, 물론이다.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이 있다.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은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바로 나의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었다. 진실하고 순수했으며 열정과 사랑으로 봉사했을 때, 바로 그 때 만난 그가 여전히 고맙고 지금까지도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누리는 모든 보람과 성취는 어느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가 만들고 짓고 가꾼 그만큼 받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했을 때 그 ‘오직 나’는 일체 세상만사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뜻인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행복도 불행도, 만족도 불만도 모두 나로부터 지어 받는 것이리라.

 ○ 당신의 고운 발가락.

또 다른 ‘인성 훈련’ 얘기를 적어본다. 우리의 신체 각 부위 중 혐오스럽고 불결한 곳이 어디인가? 항문?겨드랑이?사타구이?발바닥 등등 여러 부위가 등장한다. 그 중 공통적으로 발바닥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걷고 뛰고, 땀내나는 양말과 구두에 갇혀 고생하는 그 발, 그런데도 우리는 고맙기보다 더럽고 냄새나는 대상으로 치부해 왔다.

훈련은 2인 1조로 편성하여 각자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기로 했다. 비누로 정성스럽게 씻고 발톱을 정리하고 발톱 밑의 때를 제거하고 각질을 다듬고....... 또 다시 비누로 씻고 정갈하게 서로 상대방의 발을 어루만지기를 서너 차례. 이제 그 발에 입맞춤을 할 수 있느가?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씻고 다듬은 그 발인데.

결국은 우리 스스로 혹사시키며 구박하여 혐오감으로 대하고 더럽게 생각했던 그 발, 누가 주인이며 누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당신의 고운 그 발가락 아닌가. 모두가 내탓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세상살이의 모든 선악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하는 것. 모두가 자기자신의 탓인 것이다.

 이용숙 <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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