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 이상직
  • 승인 2014.06.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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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라!
 어설프기 짝이 없는 개구쟁이 얄개들아 돌아오라.
 너희들은 아직 꿈을 꿔야 한다.

 지난 4일 이른 아침 지방선거 투표를 마치고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세월호 침몰사고 50여 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선거라는 핑계로 희생자 유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늘 죄스러웠다.

 팽목항 방파제 끝에 누군가 ‘돌아오라!’라는 장문의 글을 게시해 놓았는데 개구쟁이 얄개들에게 엄마의 따뜻한 밥상과, 회초리 든 아빠의 호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간절한 글귀가 적혀 있어 나도 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또 팽목항 도선장에는 누군가 차려 놓은 상(床)에 학생들이 좋아할 음료와 과자들이 때마침 내린 부슬비에 젖어 더욱 마음을 시리게 했다.

 세월호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다섯 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내 가슴에 묻은 둘째가 생각나, 가슴속으로 한참을 울었다.

 재산밑천이라는 큰딸에 이어 사내로 태어난 둘째는 제법 귀티가 있고 영민했는데 15년 전 교통사고로 전주예수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둘째를 잃고 한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마치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아직도 내 가슴에 묻은 둘째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 오는데 300여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큰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아직도 찾지 못한 14명의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은 그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실종자 유가족들이 50여일째 묶고 있는 진도체육관에 도착하니 동료 국회의원인 임수경의원이 선거에 바쁜 지역구 의원들을 대신해 이들 유가족과 숙식을 같이하며 아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임의원과 함께 만난 유가족 대표들은 “곧 국회의 국정조사가 시작되는데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다”며 진도 팽목항에서 상주하며 국정조사를 실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사고를 바라보며 1:29:300법칙이라는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1명의 중상자가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펀드 매니저 시절 기업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제1 원칙 역시 하인리히의 법칙이었다.

 아무리 경영실적이 좋고 속칭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해도 필자는 가장 먼저 그 회사 경영자의 안전 마인드와 산업재해에 대한 예방 및 대책 여부를 최우선 가치로 정하고 고객들의 투자유치를 조언했다.

 안전이 제로(0)인 기업은 겉보기에는 영업이익이 수 천억원에 달한다 해도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기 때문에 안전을 투자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이제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호는 앞으로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국가, 사회 시스템의 전반적인 점검과 안전과 행복이 삶의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겠다는 자성과 함께 정치는 무엇이고, 정치인의 제대로 된 역할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좀 더 다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입법화될 수 있도록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빠른 시일내에 팽목항을 다시 찾아 유가족들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다시 나누겠다.

 이상직<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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