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월호 그리고 어머니
아, 세월호 그리고 어머니
  • 김효순
  • 승인 2014.05.07 17: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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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위에는 쌀밥과 미역국이 있었다. 그 옆에 피자와 햄버거, 컵라면과 콜라가 보이고, 양말과 핫 팩 그리고 두툼한 파카, 우유와 매실원액도 보였다. 노란 유채꽃 한 다발도 보였다. 비 내리는 팽목항 부둣가에 스님이 차려놓은 아이들의 밥상이었다.

처음에는 미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깊은 바다 속으로 스러져간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한 스님이 백일기도를 하려고 차린 제단이라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물을 흘리며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이 그저 고마워서 드시라고 누군가 건네준 음료수를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이를 본 부모들이 하나씩 둘씩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추운 바다에서 떨고 있을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물건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생일이었을지도 모를 그날, 금방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파하던 한창 크는 아이에게 엄마는 하얀 쌀밥에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피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단숨에 먹어치우던 아이에게 큰 것으로 한 판 안기고 싶었을 것이다. 추위를 잘 타는 아이에게 두툼한 양말도 신기고 싶었을 것이고, 남들이 다 입고 다니는 유명메이커의 파카 하나 못 사줬던 엄마는 이제라도 입히고 싶었을 것이다. 생전에 좋아했던 우유와 소화가 잘 안 되어 늘 챙겨주던 매실원액이었을 것이다. 제주도 수학여행 길이었으니 그때쯤이면 노란 유채꽃밭을 누비며 좋아했을 아이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밥상이 되어버린 제단 위에 쌓이는 애타는 사연들과 불러도 대답 없는 무심한 바다를 바라보며 제발 돌아와 달라고 무릎 꿇고 울부짖는 간절한 기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았다. 일찍이 홀로 되셔서 허리띠 동여매고 5남매를 키우셨던 작은 체구의 어머니셨다.

어린 시절, 잠결에 들리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그날은 어김없이 우리 남매 중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한밤중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전깃불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을 침침한 호롱불에 의지한 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팥떡을 찌셨다. 동트기 전 어슴푸레한 방안 한구석에서 떡 시루에 촛불을 켜고, 마을 시암에서 길어온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쪽진 머리 뒷모습이 떠올랐다.

 ‘…연안김씨 가문 몇째 딸 누구누구… 아무쪼록 몸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재수있게 해주쇼… 삼시랑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읊조리면서 수없이 절을 하시곤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누구의 생일날인지, 내 생일날에 어머니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내고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오로지 자식들 잘되라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안도하면서 기도소리는 이내 자장가가 되어 다시 스르르 잠에 빠지곤 했다.

  어머니의 새벽기도는 비단 생일날뿐이 아니었다. 오빠가 군대 가던 날도, 큰언니가 시집가던 날도, 내가 전주로 고등학교 시험을 치러 오던 날도, 남동생이 서울로 대학시험을 치러 가던 날도 우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이미 집을 떠나 있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틀림없이 어머니는 내가 수학여행 떠나던 날 아침에도 정갈한 냉수 한 사발 떠놓고 무사히 다녀오기를 빌고 또 비셨을 것이다.

 음울하고 스산한 바닷가에 차려진 하얀 쌀밥과 미역국 사진을 보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파오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나의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아이들의 어머니도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가져다 놓았을 것이다. 어머니들의 갈기갈기 찢겨지는 마음과 아버지들에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슴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아무도 그들의 슬픔을 대신해줄 수 없는 무정함과 그들의 아픔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함에 그저 부끄럽고 화가 치민다.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는 그들의 손을 잡고 땀을 흘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슬픔을 시로 쓰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있다. 어디선가는 그들의 아픔을 새기기 위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켜고 피켓을 들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 잊혀 져서는 안 된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이다.

 김효순<전주영어체험학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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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2014-08-08 10:56:18
음울하고 스산한 바닷가에 차려진 쌀밥과 미역국 그리고 어머니...
글을 읽다가 눈물이 핑돈다.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응어리진 그 것
목에 걸려 숨이 막히던 그 것
스물스물 녹으며 눈물이 흐른다
.
김학돈 2014-05-09 00:10:58
불러도 또 불너도 부르고싶은 어머니. 그 이름 . 감동 받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