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은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
‘선장은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
  • 조미애
  • 승인 2014.04.22 17: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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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한 구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선장은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 통탄스럽게도 이것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앞바다 북쪽 20Km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선장의 이야기다. 인천항을 출발하여 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던 배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총 476명이 타고 있었다. 전날 밤에 출항한 배는 다음날 아침 맹골수도에서 좌초되어 침몰하고 말았다. 맹골수도는 맹골도와 거치도사이에 있는 최대 시속 6노트 이상의 유속이 큰 바닷길이다.

사고가 나던 날은 유난히도 봄볕이 환하여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오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모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참으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는데 이 무슨 참변인가. 어이없는 참상에 할 말을 잊는다.

구출자는 겨우 174명뿐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1993년 위도 앞바다 서해 훼리호에서 승선 규정을 무시한 부실 투성이로 인한 참사로 292명이 사망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짙은 안개로 2시간이나 미루다가 무리하게 항구를 떠난 배는 도착시간을 맞추기 위해 빠른 길을 택하여 항로를 변경 운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선체가 기울어 위급한 상황인데도 학생들에게는 ‘나오지 말라,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방송은 계속되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그저 방송만 믿고 선실에서 기다리다가 변을 당한 학생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선체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일부 학생들은 방 한쪽에 쌓아둔 구명조끼를 가지러 갈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배는 기울어지고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한 채 선실에 남아있던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몸이 떨린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에서도 ‘이 열차는 곧 출발할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을 믿고 승객들은 객차 안에서 그대로 기다리다가 결국은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의 부상자를 낸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그때에도 위험 상황을 알게 된 기관사는 혼자만 탈출했다. 나오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선실 안에 있었던 학생들과 잠시 후에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달라는 열차 안내방송을 듣고 연기 속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지만 우리는 이미 상황이 끝난 상황밖에 있는 관찰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안이 안전한지 밖이 안전한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에 안내방송은 승객들에게 오직 믿고 따라야 할 권위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상황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소수의 몇 명이 전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을 달래며 구명조끼를 찾아 입히고 안내방송에 따라 배안에서 기다렸지만 선체에 물이 차오르자 학생들에게 바다로 뛰어 들라고 소리치며 구조를 돕다가 자신은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김홍경씨는 커튼 줄과 소방호스를 연결해 구명줄을 만들어 바닷물에 휩쓸리면서도 물속에 있던 학생들을 구했다. 단원고 교사들은 선실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바다로 뛰어 들라고 소리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물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1호 탈출을 감행한 선장을 비롯하여 끝까지 배를 책임져야 할 선원들은 구조되었다.

21세기 희망의 새시대 신뢰받는 정부에서 또 다시 발생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는 온 국민을 슬픔과 절망에 빠뜨렸으며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세상에 태어나 가슴에 지닌 푸른 꿈을 미처 펼치지도 못하고 간 학생들의 영혼이 안쓰러워 오늘 나는 통곡한다.

조미애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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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2014-04-24 01:04:58
아니라고 노컷뉴스에서 기사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