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봄비
  • 진동규
  • 승인 2014.04.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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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다, 봄비다. 지금 내리는 이 비야말로 봄비다운 비다. 이 비가 끝나면 양지쪽 모퉁이에 고사리가 아기 주먹 같은 순을 내밀 것이다. 생명 순환의 가장 멋진 노랫소리가 봄비 소리일 것이다. 조근조근 내리는 품새가 깊이, 땅속 깊이 스며들 품새다. 올 갑오년 봄의 기록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내리는 이 봄비 소리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 넣어야 할 것이다.

 성질 급한 오리목나무는 벌써 잎눈을 비비고 있고 부지런한 생강나무 노랑연두의 봉오리도 밭은기침을 해대고 있다. 진달래의 맑은 꽃빛은 노력이 여간 아니고는 이끌어낼 수 없는 드맑은 분홍빛이다. 그 빛깔로 하여 개진달래와 격을 달리하지 않던가.

 지금 내 이마에 와 닿는 이 빗방울이 지구의 역사가 아닌가. 저 빗방울 하나하나가 생명으로 이어지는 현장이, 이 신비로운 현상이, 나를 이끌고 있는 생명 역사일 터이다.

 주먹을 쥐고 대지를 뚫고 올라올 고사리는 화석식물이다. 히말리야라든지 일본열도 같은 지각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의 식물이었다.

 물과 흙이 나눠지는 무렵의 마그마시대 최초의 생명으로 태어난 식물이다. 부글부글 땅속은 마그마로 복작대다가 단단한 바위 같은 것이나 만들어지고 그럴 때 태어난 고사리,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줄기는 땅속으로만 뻗어가나 했다. 땅 위로는 잎만 피워낸 것이다. 그 해답은 그 줄기나 잎사귀에 역력하게 쓰여 있을 것이 아닌가. 오동나무 잎처럼 넓고 크지도, 댓잎처럼 뻣뻣하고 날카롭지도, 소나무 잎처럼 가늘고 침 모양은 아닌 잎이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철저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다. 삼각구조의 넓다면 넓은 잎이 접히거나 흐느적거리지 않게 빳빳하고 섬세하게 구멍이 뚫려 있다. 이만하면 고생대 그 무렵 최초로 생겨난 풀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여건을 읽어낼 수가 있지 않을까?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고 개고 했다든지 바람이 또 그렇게 이상야릇하게 지서리를 했다든지 하는 그런 여건을 떠올릴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풀릴 것 같은데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

 물속에서 살다가 땅으로 올라오기도 한다는데 땅속으로 뻗는 가지 땅 위로 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놈은 기어이 땅 위로는 잎만 피워내고 가지는 철저하게 지하에 감춘다 하기는 그렇게 해서 빙하기를 맞이하고도 생명을 지켜 내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기하학을 들이대야만 그려낼 수 있는 잎사귀는 무슨 재주로 어떤 초식동물도 입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세상천지 연기만 쿨석쿨석하는 마그마시대 그때 만들어진 잎사귀의 비밀은 끝내 진화론을 비웃기라도 하는 풀이 아닌가. 서양인들은 그 풀 어찌어찌 우려내고 먹는 우리 궐채를 모른다. 우리 선조들은 그 비밀을 풀어내려는 노력은 기울였던가 보다. 그걸 우려내고 조상님께 올리는 중요한 나물로 삼았으니 말이다.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 소리가 다르다. 바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호수에 내리는 빗방울 흐르는 물이 되기도 하고 그냥 다시 하늘로 증발해 버리는 물빛방울도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빗방울의 장엄송을 적어내고 싶은데 물감이 없다. 저 다양한 물감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답을 주지 않는다. 빗방울의 저 다양한 음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끝내 우리에게는 무채색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만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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