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
  • 김효정
  • 승인 2014.04.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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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6

 타인의 삶을 동경하며 사는 사람들은 현재의 삶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물론 본인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가끔은 내 삶에 ‘만약~했더라면’이라는 영어의 If 용법을 들이대기도 하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나 동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의도치 않게 ‘나’를 버리고 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처한 남자가 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대표작 <빅 픽처>의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 그는 뉴욕의 잘나가는 변호사이자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아빠, 베스의 남편이기도 하다.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그였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자신의 꿈을 접고 변호사가 됐다.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 삶, 그러나 요즘 아내와의 관계가 신통치 않다.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다. 의심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결국 변호사적 기질을 발휘해 밝혀낸 아내의 남자는 바로 옆집의 변변치 않은 사진가 ‘게리’.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벤은 게리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벤은 ‘어쩔 수 없이’ 게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진가 ‘게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벤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작가의 꼼꼼한 문장으로 벤이 게리가 되는 과정과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인간관계에서 ‘당신 때문에’로 시작하는 원망이 더해지면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결국, 벤과 베스는 최악의 길을 걷고 그 길 한가운데서 벤은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게 된다.

 완전 범죄를 꿈꾸며 뉴욕에서 마운틴 폴스라는 소도시로 떠나온 벤은 사진가로서 활동하게 되고, 잘 찍은 사진 덕분에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자신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오히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겪으며 벤은 흔들린다. 내면에 감춰왔던 자신의 꿈을 향한 열망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짓눌러 버리고 만다. 그러한 욕심은 완전한 범죄,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결국 벤은 게리로서의 삶마저 잃게 된다. 이토록 모진 운명이라니. 또다시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벤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미국 작가이지만 프랑스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답게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원작이 있는 영화가 대체로 원작에 충실한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원작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결말로 전혀 다른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 프랑스로 배경이 바뀌면서 영화의 바탕색이 달라진데다 군더더기 없이 쳐낸 스토리라인은 벤(영화 속에서는 폴)이라는 인물의 심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결말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본성에 더욱 접근하면서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구원 받고자 하는 벤의 열망이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지난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 행한 나의 선택 결과가 현재의 내 모습이다. 후회스러울 수도,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만족한다면 삶에 충실하면 될 것이고, 후회된다면 앞으로의 시간들에 새로운 선택을 추가하면 된다. 그러나 고착화 되어 있는 일상에서 그러한 선택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인생이란 반전의 연속,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빅 픽처’, 즉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 볼 줄 아는 혜안을 길러 보는 것은 어떨까. 한 그루 나무 밑에서 아옹다옹 할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 인생이라는 큰 숲을 바라볼 때이다.

 김효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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