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생각하는 춘삼월의 희망
서민을 생각하는 춘삼월의 희망
  • 김복현
  • 승인 2014.03.17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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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은 누구나 좋아한다.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봄은 삼삼해서 좋다고 대답을 한다. ‘삼삼하다’는 말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손자의 방끗방끗 웃는 얼굴이 그립고, 군대 간 아들의 모습이 그립고, 헤어진 애인의 얼굴이 눈에 어리고, 유명을 달리한 부모님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새싹이 움트는 따사로운 계절, 새로운 기운이 온천지에 가득하기에 그리움과 함께 활력이 넘치는 삼월이다.

그런데 지난달 생활고로 자살을 선택한 세모녀의 슬픈 소식은 쉬 가시지 않고 아직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는 한 끼 밥걱정을 하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했기에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일까? 밥만 먹을 수 있다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했던 때가 그리 먼 옛 이야기가 아니다.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열심히 일했던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가난의 고통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뒷면의 실상을 보면 가난 속에 묻혀 있는 우리 이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4,000달러 시대, 주체할 수 없는 풍요로움이 넘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어두운 뒷면은 아직도 의식주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절대 빈곤층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양극화가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세상은 풍족해졌는데 아직도 주린 배를 잡고 살아야 하는 이웃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다.

그리고 이들 극빈층은 살기가 어려우면 자살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서울 송파에서 그리고 지방각지에서 들려오는 자살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설명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자살을 죄악시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 자살자들의 아픈 이면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참담한 결과를 놓고 구태여 위정자들만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간직하는 생명 존중 의식을 되살려 보고픈 마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백성을 보살피는 일은 지방 수령들의 중요한 업무였다고 역사기록은 말하고 있다. 진휼(賑恤)하는 일은 지방수령의 일차적 업무였으며 진휼을 게을리하다간 목이 달아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진휼이란 흉년에 가난하고 군색한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는 뜻이다. 왕(王)도 변복(變服)을 하고 민심시찰을 나가 백성들의 생활을 살폈다고 하며 이런 일을 잘한 왕을 성군이라 칭송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무관심 속에 묻혀 있는 많은 국민들은 죽음을 바라보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려는 우리 이웃들이 많이 예고되는 현실이다. 한번이라도 우리 주변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자살이라는 낭떠러지에 서는 일은 줄어들 것이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종이 줍기로 몇천 원 벌이를 하는 노인들, 일거리가 없어서 술에 의존하는 노동자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빈둥대는 젊은이들, 과연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관심 있게 바라본 적이 얼마나 될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마당에 진정으로 보살피는 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되었다.

 정치지도자가 되겠다는 출마자들은 ‘서민을 위해서’라는 구호를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내걸고 있다. 사실은 투표에 별 관심이 없는 대상이 서민들인데도 선거철이 되면 서민을 위하는 구세주 노릇을 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구호대로 이행된다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우리 사회는 춘삼월 호시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서민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만다.

 우리 사회에 죽음의 행진이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가 진정 복지를 말하는 국가일 것이다. 가족과 이웃이 보살피고 국가가 책임지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강구해나가는 나라를 건설해보는 길이 진정한 복지 국가일 것이다. 언젠가는 잘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그리면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서민계층은 가난을 떨쳐버릴 희망이 너무도 부족하다. 계층 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고 그 장벽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잘사는 계층은 대물림에 몰두하고 부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 풍토도 심각하게 양극화된 우리 사회다. 희망이 가득한 나라 건설에 정치지도자들의 생각이 집결되기를 바라면서 춘삼월이 삼삼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복현<익산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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