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치와 돈 시(詩)
돈의 가치와 돈 시(詩)
  • 이동희
  • 승인 2014.03.12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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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다다익선(多多益善-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한 것이 많지만, 그 중 제일은 돈일 것이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구나 물질만능주의-황금숭배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말기 자본주의 시대인 현대에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데 선뜻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긴 최영 장군 같은 분이 다시 등장하여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일갈한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느냐며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귀히 여기는 돈을 돌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충격을 넘어 신선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은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기업에 47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오랜 노사분쟁으로 스무 명이 넘는 노조원들이 자진하거나 생활고와 울화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마당에 이번 판결은 노동자들을 아예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에 노조원들은 물론이요,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을 마음에서 머물지 않고 노조원들의 배상액을 시민의 십시일반(十匙一飯-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도와주기 쉽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으로 갚아주자는 제의를 한 시민이 있었다.

 “47억…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천원씩 10만명이면 되겠다.”는, 두 아이를 둔 서른아홉 살에 이른다는 한 엄마의 편지가 현금과 함께 한 시사주간지의 편집국장에게 배달되었다.(『시사IN』제329호) 이를 받은 편집국장은 주부의 편지와 현금을 ‘무겁고 한 편으로 반갑지만, 눈물만 나는 심정’을 그대로 지면에 전달하였다. 이를 읽은 필자도 도대체 돈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가? 새삼스럽게 돈의 위력에 감동하며 그 자리에서 현금 4만7천 원을 편집국장에게 우송함으로써, 미안하고 막막하며 답답한 현실의 울분을 대신하고자 했다.

 이런 심정은 필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부의 마음을, 편집국장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칠 수 있겠는가?”『행복한 하루』에서 톨스토이가 지적한 사실이 현실화된 것이다. 편집국장의 편지를 읽은 독자들이 현금을 잡지사로 보내자 마침내 배상액을 모으자는 ‘노랑봉투’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작은 마음의 물결이 불과 두 달여 만에 일차 모금액인 4억7천만을 달성하고, 2차 모금을 개시하여 5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재단의 <노랑봉투> 운동에 참여하여 귀한 돈을 기부한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물질의 가치로 보지 않고 사람의 가치로 본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돈 보기를 돌같이 하고, 사람 보기를 황금같이 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쉽게 결단할 수 없는 일이며,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일간지에 ‘돈 詩’라는 코너에 소개된 시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김종삼의「장편-2」) 장님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려드리려는 거지 소녀에게 10전짜리 두 닢은 47억보다 귀하다. 누가 있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였던가?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생존의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과한 배상액 47억은 눈물 나고 분통 터지는 시민들에게는 차가운 돌멩이가 되게 하여 어두운 시대의 밤하늘을 날아가는 화살이 될 것이다.

 필자도 답답하고 눈물 나는 심정을 ‘돈 詩’로 읊은 적이 있다. <서울 남산을 구경하고 오는 날// 지공선사 대접받는다며/ 고궁도 공짜요, 밥값도 깎아준다며/ 우리나라 좋은 나라 교도인/ 은퇴거사 형님께/ 불경한 언사를 쏘아준 날// 텅 빈 호남고속도로 귀향길/ 미세먼지가 황사에 얹혀/ 앞길 자욱한 날>(졸시「돈 시·3」전문)

 돈의 가치는 돈에 있지 않고 그 쓰임에 있음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거지소녀의 10전짜리 두 닢이 지하철 공짜보다 쓰임이 크며, 4만7천원이 47억보다 그 쓰임이 커서 돈인 것이다. 황금이 돌 화살이 되어 문맹의 시대를 날아가고 있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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