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 김효정
  • 승인 2014.03.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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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2

 책 읽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하물며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을 기계에 집착하도록 만들었을 뿐,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사회는 무감각해졌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무척 희귀한 모습이 되어 버린 요즘, ‘나는 책을 안 읽어도 내 자식은 책을 읽기 바라는’ 다소 이기적인 부모의 마음으로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 말고는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갈수록, 아니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 열다섯 소년 미하엘의 책 읽어주기는 부모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시작된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의 책 읽어주는 남자 미하엘은 한 여자를 위해 일종의 의식과 같은 책 읽기를 시작한다.

 소설은 열다섯 소년과 서른여섯의 성숙한 여인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자극적인 통속 소설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책은 그리 간단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그 시절 ‘그’가 책을 읽어 주었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일인칭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라는 개인적 관계에서 확장돼 전쟁의 전,후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랑인지 단순한 욕구충족인지 모를 한나와 미하엘의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가 아무 말 없이 떠나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미하엘이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곳은 법정. 법학을 공부하던 미하엘은 담당교수의 수업의 일환으로 방청하게 된 한 재판에서 피고인으로 서 있는 한나를 보게 된다.

 그녀의 죄목은 아우슈비츠에서 감시원을 하던 시절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성들을 이송하던 중 한 교회에 가둬 모두 불에 타 죽게 한 혐의다.

 미하엘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사라졌던 그녀는 전 회사에서의 안락한 승진의 기회도 마다하고 왜 아우슈비츠로 갔으며, 그곳에서 이러한 살육을 저질렀을까.

 사실 그녀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 이러한 문맹은 그녀의 삶 전반을 지배하는 수치심으로 자리 잡았고, 결국 그녀는 그 수치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고, 안정적인 직장을 떠났으며 모든 죄를 자기 것으로 만들며 세상과의 단절을 자초한다. 결국, 마녀 재판식으로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으며 한 사람에게 전쟁의 부조리와 그로 인해 파생된 모든 죄악을 떠넘기며 남은 자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완벽하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는 한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재판장의 모습은 그들 모두가 이미 그들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미하엘은 첫 만남에서 사랑을 나누기 전 의식처럼 행했던 책 읽어주기를 감옥에 홀로 남은 한나를 위해 다시 시작한다.

 같은 영화 ‘더 리더: 책읽어주는 남자’에서 케이트 윈슬렛은 이러한 한나의 모습을 무척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비밀과 슬픔을 동반한 그의 모습은 담담해서 더욱 처연했고, 특히 이 작품으로 그는 오스카 트로피뿐만 아니라 그 해 주요한 상들의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교묘하다. 냉정하게 도덕적 질문을 들이대면서 30대 여성과 10대 소년의 음란한 장면을 묘사하며, 동시에 우아한 스타일과 문학적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는 <타임>의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작품은 사랑에 대한 이해와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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