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이경신
  • 승인 2014.02.10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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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시인인 이해인 수녀님의 ‘봄 일기’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 읽어 보았다.

춥고 긴 겨울이 슬슬 미워지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마음은 벌써 봄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이다.

봄을 알리는 첫 절기인 엊그제 입춘은 옛 어르신들의 말처럼 “입춘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 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매서운 한파가 옷깃을 꽁꽁 여미게 했다.

하지만 입춘이 지나면서 언 땅이 녹고 벌레가 움직이기기 시작하고 물고기가 얼음장 밑으로 돌아다니며, 철새가 다시 북으로 날아갈 채비를 하는 시기이다.

또 겨우내 구들장에서 실컷 게으름을 피운 농부들도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농기구를 손질하고 집안의 묵은 때와 음기를 떨어내고 봄의 양기를 맞는 봄맞이 채비를 서두를 것이다.

한 겨울을 이겨내고 입춘이 그렇게 시나브로 우리 곁에 다가왔지만 회색빛 도회지 그림자에 갇혀 봄은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는 나의 첫 봄을 맞이했다.

벌써 졸업시즌이 되었는지 재기발랄한 학생들이 꽃다발을 두 손 가득 안고 가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까운 꽃 가게로 발길을 옮 긴 것이다.

밖의 날씨가 아직은 쌀쌀하지만 화원의 화사한 봄꽃들은 여름날의 화려한 정열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수수하고 고운 자태를 저마다 자랑하고 있었다.

노란 후리지아와 보랏빛 자운영, 분홍빛 장미, 팬지, 안개꽃 등 저마다의 화려한 자태와 향기를 맡으며 모두 갖고 싶다는 욕심이 통했다.

그런데 그중 아직 꽃 봉우리 조차 여물지 않은 동양란 소심이 눈에 번쩍 띄었다.

키가 크고 꽃잎이 주렁주렁 매달려 화려한 서양란과 달리 작고 두툼한 잎사귀에 가려 순백색의 꽃대가 나올랑 말랑한 소심란이 어쩌면 외로워 보이고 어쩌면 고고한 자태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잡아 당겼다.

동양란 한 촉을 사가지고 오는 발걸음은 어느새 봄의 희망을 키우기 시작했다.

거실 한 켠에 은은하게 자리를 잡은 동양란을 바라보니 아득히 멀어져간 추억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시절, 막 새 학기가 시작되고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총각이였는지 여드름 자욱이 남아있는 앳띤 모습의 선생님 으로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은 유난히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내심 새 봄이 아지랑이 꿈결처럼 흘러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군에 입대한다며 학교를 떠나셨다.

담임 선생님이 되신지 채 한 달 남짓 선생님이 떠난 그 봄이 왜 이리 허망했던지, 그 후로도 봄만 되면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또 하나의 추억은 이맘때면 어머니는 부화장에서 막 부화된 병아리를 구입해 아랫목 한 켠에 빨간 백열등으로 보온을 해주는 둥지를 만드셨다.

솜털같은 샛노란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날개 짓을 하면 그게 그렇게도 신기해서 하루에도 열 두 번을 들쳐보다 혼이나 곤 했다.

지금은 다 추억으로 지났지만 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처럼 추운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근원이요, 내일을 기약하는 따뜻한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누군가 “아직도 봄이 저만큼 멀리 있는데 웬 초랭이 방정을 떠느냐”고 핀잔을 준대도 나는 나의 봄을 맞이하고 싶다.

이해인 수녀님의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라는 시구처럼 나도 어서 일어서 누군가의 봄으로 다가가고 희망이 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경신<(사)전라북도 방범연합회 여성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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