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출발은 변화의 시작에서…
새해 출발은 변화의 시작에서…
  • 김복현
  • 승인 2014.01.08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해나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짐을 시도해 본다. 엉클어진 일상을 바로잡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삶의 방식을 바꾸어보려고 해보지만 실제로는 어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해가 바뀔 때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새해 결심을 한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분위기는 양극화와 고달픔에 찌들어 있어서인지 어수선한 새해 벽두인 것 같다. 사회분위기는 지난날의 잘못된 습관이 아닌 새로운 습관을 시도하려는 위대한 변화로 이어져야 하며 이 변화의 중심에 나 자신과 ‘질서’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질서는 각 개인의 목소리에 눌려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된다.

질서의 원칙을 법이라고 말한다. 법이란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모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공동생활의 질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도덕이며,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노력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며,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방정식이라고 한다. 법질서 가운데 살아온 보통사람들이 크게 후회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가난하여 어렵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살아온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베풀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악착같이 돈과 권력을 움켜쥐어 보았지만 죽을 때가 되니 별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 주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며 살았을까? 후회를 하는 게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둘째는 참고 견디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어렵고 힘들 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불필요한 말을 하고 쓸데없는 행동을 했던가? 지나고 보니 충분히 참을 수 있었고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참았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셋째로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왜 그렇게 인색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후회하며 이러한 나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후회한다고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 없는 새해가 되도록 각오를 한번쯤 해 봄직 하다. 과연 새해에 들어와 새로운 각오대로 잘 진행되어가고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이다. 대다수가 선뜻 ‘예’라는 만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언제나 지나온 시간에 대해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미안해하는 마음이 진정 내 마음이라 그런 것일까?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고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했다면 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방정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바로 위대한 변화의 시작이다. 성경 말씀대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하였는데 왠지 우리 삶은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크게는 나랏일에서부터 작게는 나 개인의 일까지 시작은 크고 희망만을 말하지만 언제나 끝은 미약하고 아쉬움만 남는다.

특히 올해는 갑오년으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보아야 하는 해이다.

사람과 사람, 정파와 정파, 국가와 국가 간에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새로운 질서를 찾기까지는 숱한 고통이 동반될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푸른 초원이 있어야 하나 미움과 좌절이 들끓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화한 환경 탓인지 간격이 더 벌어지고, 주는 자보다 받기를 바라는 자가 더 늘어만 나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정치권은 대선이 끝난 지 까마득한데 아직도 끝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다시 선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자기네 이익만을 추구하고 공익을 위하는 일에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구 상에 코리아(KOREA)라는 이름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3대 세습과 현대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패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본은 참혹한 살육의 만행을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적반하장격으로 야스쿠니 참배라니? 잘못 만난 이웃이라고 탓하기에는 서러움이 북받쳐 온다. 국제사회나 국내사회가 신뢰를 창조하는 사회로 변화되어 가야 하나 지금은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현실이고 보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막막한 사회는 시민 윤리마저도 공동체 정신마저도 사라져가기에 사뭇 걱정이다. 자기주장만 넘치는 사회에서 누가 어렵고 못사는 사람들을 걱정할 것인가? 그렇다고 우리의 미래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미담이 넘치는 희망이 보이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새해에는 희망만을 말하면서 희망을 일구어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복현<익산문화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