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이 국가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호국보훈이 국가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 조금숙
  • 승인 2011.06.21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은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들의 명복을 빌며 그 숭고한 참 뜻을 기리고 추모하는 달입니다.

광복과 건국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많은 선열들이 가정과 부모 처 자식을 다 뒤로하고 오직 조국 위해 아낌없이 몸바쳐 희생하셨으니 임들께서 흘린 투혼 앞에 삼가 머리숙여 명복을 비는 6월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유월은 하염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어찌 일년중 6월만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떠들어 데야 한답니까?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정부수립 이후 2년도 채 못 되어 한국전쟁을 맞이하였고 그때 40만명이 넘는 국군이 전사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학업까지 중단하고 학도병에 나아간 학생들은 10대의 젊은이들이었고 대한민국의 건아 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군번도 없이 공부하다 전쟁터로 달려가 산화하였고 무명용사들은 낙동강전투 최일선에서 전설과도 같은 결실을 맺었기에 우리는 이들을 겨레 앞에 영웅으로 모시고 고귀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동 어린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도 누리고 번영도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원조를 받았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될 정도로 경제 10위권에 들을 정도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정부나 기관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미국은 한국 전쟁때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한때 한강 바닥을 다 뒤지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에다 돈을 주면서 북한 땅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펴기도 했습니다.

우리 전사자 만 8천 여명은 아직까지 전사 통보조차 못 받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유해를 찾지 못해 전사 확인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35사단 향토사단이 지금 전사자 유해발굴의 노력을 하고 있어 “땅이여 열려라.” 하는 개토식도 무주 적상산 기슭에서 거행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만 아직도 깊은 상처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적지않은 병사들이 원인모를 병 때문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병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78년 이후였습니다.

베트남에 참전했던 전역한 미군들이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에야 비로소 앓고 있는 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파월 피해자도 무려 3만 5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국가는 제대로 치료와 대우를 해 주었습니까? 국가유공자인 이들에게 충분한 처우와 예우가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 무서운 고엽제가 600드럼이나 경북 칠곡군에 묻혔다니 낙동강 실개천도 문제입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기념관 벽면에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 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국가보훈은 이런 희생과 나라를 위해 가신 분들과 그 유가족을 예우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애국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처우가 바로 서지 않고는 국민의 가치관과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호국보훈이 국가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호국보훈의 정신이 없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