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8>汗馬之勞(한마지로)
<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8>汗馬之勞(한마지로)
  • 박기홍
  • 승인 2011.03.01 14: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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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언으로 흥하고, 간언으로 망한다
汗馬之勞(한마지로)-임금이나 나라, 주군을 위해 땀을 흘리는 노력을 말한다. 항우에 비해 보잘것없는 유방이 중국 최대의 한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참모의 말을 경청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성품이 있어서 가능했다. 유방은 수많은 전쟁에서 위기를 극복해주고 항우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작전참모 장량, 천재적인 무장 한신, 행정참모 소하, 선봉대장 번쾌 등 1급 참모들을 제대로 활용했다. 도내 정치권의 1급 참모들 세계를 조명해 본다.





“보좌관을 그만두겠습니다”.

민주당 전주시장 공천을 앞뒀던 2006년 3월 어느 날 밤. 윤문훈 보좌관이 장영달 전 의원과 전주 완산갑 핵심당직자 등을 향해 거친 숨소리를 몰아가며 짤막하게 외마디를 내던졌다.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는 급랭했다. 윤 보좌관이 누군가. 장 전 의원과 호흡마저 같이 해온 평생동지이잖은가. 잘 알려지다시피, 장 전 의원과 완산갑 당직자 상당수는 당시 민주당 전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송하진 후보가 아닌 차종선 후보를 지지했다. 윤 보좌관이 이에 ‘직(職)’을 내걸고, 이른바 밥줄을 건 담판 승부수를 던졌던 것.

물론 그는 이날 이후 독박을 써야 했다. 송 후보와 고교 동기인 까닭에 “정치가 동문의 잔치인 줄 아느냐”라는 쓰디쓴 비판부터 “경선 판도를 제대로 읽고 하는 짓이냐”라는 거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윤 보좌관이 던진 냉철한 주사위는 주군인 장 전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전주시장 선거 승리라는 전리품을 가져다준다. 때론 주군과 충돌해서라도 선택을 도와야 하는, 힘겨운 특급 참모의 삶의 한 단면이다.

고려의 무장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경국전을 집필한 정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곁에는 노련한 정치 컨설턴트이자 심우(心友)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서 있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1인자 곁에는 항상 그들을 뒤에서 돕고 성공으로 이끈 참모가 있다.

김완주 지사 옆엔 정자영 비서실장과 김승수 전 대외협력국장 등 걸출한 2명의 참모가 있다. 선(線)으로 치면 직선(정 실장)과 곡선(김 전 국장)의 조화다. 삼각형이든 타원형이든 직선과 곡선이 만나 못 만들 도형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주군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조직을 극대화하며, 심지어 온몸을 던져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이들에 대한 김 지사의 신뢰가 상상초월인 까닭이다.

송하진 전주시장 주변엔 덕장인 김용무 기전대 교수와 복심인 이원택 비서실장이 떡 버티고 있다. 송 시장의 죽마고우인 김 교수는 안방을 책임지며 적과 동지의 구별 없이 따스한 온기로 사람을 대한다. 이 실장은 자신을 낮추는 끈질김과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진정성을 무기로 하는 전략가다. 이들 둘의 조우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만남이랄까.

참모들은 한 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신경을 너무 써 위궤양을 많이 앓고 만성두통도 참모들 사이엔 흔한 병이다. 최규성 의원의 김형욱, 임효준 보좌관은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는 원형 탈모로 고생한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호남의원 30% 공천탈락 기준을 마련하면서 최 의원이 백척간두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 공천방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결국 공천 평가 기준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탈모 증세는 최 의원의 재선과 함께 시작됐지만 그래도 참모 입에선 휘파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강귀섭 보좌관은 정세균 최고위원을 위해 음지에서 일한다.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내면서 정 최고위원이 화려한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진장·임실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할 때도 강 보좌관은 전북 현안과 지역구 일을 묵묵히 챙겼다. 그는 작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상당수 시·도의원들로부터 정 최고위원 지지를 얻어냈지만 정치적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치아의 절반을 임플란트로 교체하는 고통을 맛본다.

1급 참모가 없는 정치인은 남보다 2배 뛰어야 한다. 대표적인 경제·정책통인 강봉균 의원 곁에는 눈에 띄는 참모가 없다. 강 의원은 국회 상임위 활동은 물론이고 언론사 칼럼 등을 직접 준비하는 등 남의 머리를 절대 빌리지 않는다. 능력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지만 수 싸움의 정치세계에서 가끔은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참모는 짧은 순간에 유용한 간계나 네거티브 한 술수를 꾸미는 모사꾼이 아니다. 주군이 가고자 하는 길의 동반자이자 파트너이다. 주군 보다 한 발 먼저 생각해야 하고, 한치 넓게 살펴봐야 하며, 한 번 더 검토해야 하는 사람들이 보좌진이다. 가방이나 들고다니면서 시킨 일이나 하며 심부름에 만족하는 사람, 예스 맨(Yes Man)에게는 결코 참모란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박기홍기자, 서울=전형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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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사랑 2014-10-29 02:57:29
무척 좋은 글이네요. 뒤늦게 접하게 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