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곳간과 기업유보금
저승 곳간과 기업유보금
  • 김진
  • 승인 2010.10.27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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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출간된 동화책의 옛날 얘기다. 아직 저승에 가려면 30년이나 남은 돈 박서방이 저승사자의 실수로 인해 저승으로 잡혀갔다. 잘못 임을 확인한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화를 내면서 얼른 돌려보내라고 한다. 한데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가려면 노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잠을 자다 저승사자에게 끌려온 박서방에게 노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때 저승사자가 일러 주길 저승에도 저마다의 곳간이 있으니 거기에 있는 돈을 좀 빌려 쓰면 될 거라고 한다. 살길이 생긴 박서방은 저승의 곳간을 찾아갔지만, 자신의 곳간엔 달랑 볏짚 한 단 뿐이었다. 빈 곳간에서 노자를 빌릴 수 없게 된 박서방이 ‘어찌하여 내 곳간에는 볏짚 한 단밖에 없느냐?’고 묻자, 저승사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꾸짖는다. ‘너는 이승에 있을 때, 남에게 베푼 일이 없질 않느냐? 단 한 번, 가난한 아낙이 아기를 낳을 때 짚이 없어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네 가 짚을 한 단 구해다 주었지! 그래서 그나마 볏짚 한 단 이라도 있는 것이다.’



* 기업의 유보금이 3만%라니

저승사자가 말하길 ‘이승에서 베푼 만큼 저승의 곳간에 쌓인다는 것이다. 결국 이웃의 곳간에서 노자를 빌려서 이승으로 돌아 온 박서방이 딴사람이 되어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권선장악으로 동화는 끝을 맺는다. 동화를 옮기다보니 나도 나지만, 재벌들이 걱정됐다. 서민들의 저승곳간이야 그만그만하면 되겠지만, 재벌들은 엄청나게 큰 곳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하긴 그건 모르는 소리 일수도 있다. 우리 기업가들의 경영 행태나 최근 우리기업들의 유보금 보유비율을 볼 때, 어쩌면 재벌들의 저승 곳간에는 볏짚 한 단 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익히 알다시피 기업은 '이윤 창출'의 목적을 가지고 사업 활동을 한다. 1년 동안 매출을 발생 시킨 후, 각종 비용과 세금을 지불하고 나면 '순이익'이 남는다. 그 순이익 중 이사회 결의에 의해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고, 나머지는 사내에 유보하여 미래의 사업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 가지고 있는 현금성 자산을 유보금이라 한다. 그러한 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기업의 안정적인 가치는 보장 받을 수 있겠지만, 이익배당이나 투자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한데 우리 기업들의 유보금의 비율이 도를 넘고 있다. 올 상반기 집계로 상장사 552개의 유보율은 평균 700%정도다. 자기자본금보다 7배나 많은 자금을 가지고만 있는 것이다. 심지어 유보율 1위인 태광산업의 경우는 유보율이 무려 3만4천134%로, 1조9천억 원의 자금을 가지고 있다. 뒤를 이은 SK텔레콤도 거의 3만%에 육박하며, 13조원이 넘는 자금을 가지고 있다.



* 유보금의 투자로 내수와 청년실업 씻어야

한데 유보율 1위인 태광산업의 경우, 비자금조성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검찰의 추정치가 7.500억 원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자본금56억 원짜리 회사가 7천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빼돌리고도, 2조원에 가까운 현금자산을 쌓아두고 있다니 돈 버는 재주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업 프렌들리에서 서민 프렌들리로 바뀌어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기업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활기차다. 저승사자와도 같은 중수부까지 나서서 부도덕한 기업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상관관계야 없겠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 격으로 유보율이 가장 높은 회사에서 제일 먼저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온 것도 아이러니다. 실제 저승에 곳간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 사람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러한 부도덕한 기업인들이 저승에 불려간다면 돌아올 노자마저도 없을 듯싶다. 유보금의 활발한 투자로 내수와 청년실업을 씻어 줄 착한 철학을 가진 기업가 정신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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