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수출 세계 9위의 딜레마
한국 - 수출 세계 9위의 딜레마
  • 김진
  • 승인 2010.09.29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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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농업은 1770년대까지는 국내의 수요를 만족시키고도 남는 곡물 수출국 이였다. 하지만 1790년대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많은 농민들이 공장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농촌인구는 급격히 감소되었다. 농업 전반에 사람의 노동력이 절대적이었던 18세기의 농사기술에 비춰 보면, 농촌인구의 감소는 곧바로 곡물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장으로 많은 인력이 집중됨으로써, 영국은 곡물 수출국에서 곡물 수입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의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는데, 나폴레옹이 영국의 경제와 상업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린다. 유럽대륙의 모든 항구를 봉쇄함으로써 영국과 대륙 간의 교역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대륙으로부터 식량을 수입 할 수 없게 된 영국 내의 곡물가격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09년부터 5년 동안이나 흉작이 계속되었다. 이처럼 악재가 겹치다보니 곡물의 가격은 자급하던 때에 비해 3배나 상승했다.



* 리카도와 맬서스의 논쟁

이렇게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지주들의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서민들이나 공장의 직공들은 끼니를 잇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1814년에 이르자 농사도 풍년이 들고, 나폴레옹의 패전으로 대륙과의 무역이 시작되며 값싼 곡물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값싼 수입곡물로 인해 치솟았던 영국의 곡물가가 급락하게 되었을 때, 자유무역으로 곡물을 수입해서 기업가와 서민들을 보호하는 게 국부에 이익이 된다는 리카도와 보호무역으로 곡물의 수입을 제한해서 지주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부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는 맬서스의 논리가 충돌하게 된다. 160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를 지금의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보면 상황은 똑같다. 많은 나라들과 FTA를 맺어, 여러 농산물들을 수입해 오면 국민들은 훨씬 싼 값에 공급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농민들은 비싼 인건비와 높은 생산원가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도태하게 된다. 반대로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입을 억제하는 보호정책을 쓰자니 우리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문제다. 우리경제의 수출의존도는 G20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아 GDP 대비 43.6%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용역 등 모든 생산 활동의 절반은 수출에 기대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 수치는 세계의 시장이라 불리며 세계무역순위 3위인 미국의 수출의존도 7.5%에 비하면 6배이며, 일본의 수출의존도 11.4%에 비해도 4배가 넘는다.



* 자유무역의 덫

결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하자니 수출에 기대고 있는 나라경제 전체가 무너지고, 나라경제 살리고자 FTA를 앞세운 자유무역에 힘쓰자니 농업 및 국내 산업이 설자리가 없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IMF와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 그리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세계무역 불균형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중국과 한국처럼 무역에서 많은 흑자를 내는 나라들은 수출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너무 수출에 의존해 돈 벌 생각만 하지 말고, 국내 투자와 내수를 부양시키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크게 요약하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자국경제가 어려워진 미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들의 수출품을 소비해 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도 겪다시피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간 대외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 오갈 데 없이 함께 당한다는 것이다. 둘 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우리처럼 국가경제를 무역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나라의 운명을 남에게 기대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국가와 기업 모두 눈앞의 보이는 이익에서 벗어나 멀리 봐야 할 때이다. 자유무역은 피할 수없는 시대적 선택이지만, 국내투자를 늘이고, 고용증대에 힘을 모으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생존전략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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