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81> 사내 여럿 절단 내겠구나
가루지기 <581> 사내 여럿 절단 내겠구나
  • <최정주 글>
  • 승인 2003.10.01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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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 <57>

“그것이 사람맴이제. 서방 두고 새꺼리 묵는 계집이 그런 맴도 없대서야 어디 사람계집인가? 천하의 잡년이 아니면 여우계집이제.”

“아니, 다행이요.”

“꽃값 걱정언 허덜 말게. 나리가 나헌테 ?겨논걸로도 자네 열흘 꽃값언 될 것이구만. 글고, 조선비 나리댁이 여그서 엎디면 코달데네. 사람얼 보내서라도 자네 꽃값 안 챙겨주시겄능가?”

“돈 댐이 아니랑깨 자꼬만 그러시요이. 자꼬만 이년얼 들병이 취급허시면 갈라요, 나넌.”

“미안허네, 미안혀.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병 든 서방님 약값 땜이 어거지로 나온 것얼 내가 잘 아는구만. 나리만 잘 뫼시소. 자네 묵고 사는 걱정언 안 해도 될 것인깨.”

주모가 단단히 이르고 돌아간 다음이었다. 조선비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열더니, 누런 금가락지 하나를 꺼내었다.

“정표니라.”

조선비가 금가락지를 옹녀 년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안 이러셔도 되는디요이. 이년 손구락에 금가락지가 당키나 허간디요.”

“금가락지라는 것이 어디 꼭 손구락에만 끼라는 것이라더냐? 지니고 있으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니라.“

“지낸 번에 주신 것도 안직 그대로 있는디. 아심찬허구만요. 이 은혜럴 어찌 갚는다요?‘

“서나서나 갚으면 될것이니라. 이제는 나도 급할 것이 없니라.”

조선비가 술잔을 들어 내밀었다. 그 잔에 화주를 가득 따라주며 옹녀 년이 눈으로 웃었다.

“헌디, 나리넌 도대체 금가락지럴 몇 개씩이나 가꼬 댕기시오? 지낸 번에도 주시더니, 또 주신 것얼 본깨, 금가락지럴 여러개 가꼬 댕기는갑소이.“

“아니다, 너 만내면 줄라고 미리 준비해뒀었니라.”

“계집덜얼 만내면 주실라고 미리미리 여러개럴 마련해노신 것언 아니고요?”

“아니니라.”

“설마, 안방 마님껏얼 몰래 가꼬 오신 것언 아니제요?”

옹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네가 나를 아예 도둑 취급이구나. 안방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러시다면 다행이고라.”

다시 한번 옹녀 년이 눈으로, 입으로 웃었다.

“그 웃음 함부로 웃지 말거라. 사내 여럿 절단 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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