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1월, 황해도 금천 출생의 이대용 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참전,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제6사단 2연대 대전차포 중대 제2소대와 함께 강원도 춘천 전투에서 북한군 약 2개 중대를 격전 끝에 저지하여 적의 춘천 조기 점령의 기도를 무산시켰다.
1950년 7월, 충청북도 음성 무극리 전투에 참전하여 적 1개 연대를 격멸하는데 기여했으나, 교전 중 부상을 입어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약 40여 일 만에 전장으로 복귀한 이대용 중대장은 1950년 10월 26일, 국군의 선봉 부대로 압록강변 초산까지 진격했고, 그의 부대원들이 통일의 염원을 담아 강 언덕 높이 태극기를 꽂았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졌고 1950년 10월 28일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이대용 중대장은 “군인은 총칼을 버릴 수 없다.
사즉생(死則生)으로 마지막 총알 한 발은 자기를 위해 써라”라고 부대원들에게 명령했고, 적들과 수많은 교전 끝에 남쪽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1975년 주월 한국대사관 공사로 교민 구출에 최선을 다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에서 활약한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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