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86> 전북의 위대한 ‘비트루비우스’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86> 전북의 위대한 ‘비트루비우스’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3.07.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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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서재 한쪽에 ‘고정석’을 차지하는 책은 그야말로 고전이다. 풍수 원전 몇 권이 ‘고정석’을 차지할 뿐이다. 그런데 서양 서적으로 ‘고정석’을 갖는 것이 ‘건축에 관한 책 10편’이다. 고대 그리스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말한다.

“건축가는 기후문제·공기·토지 적합도·물에 관한 의학적 지식·건축물의 낙수(落水)·채광·수도(水導) 등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동시에 건축가는 철학자이자 역사가여야 한다.”

인생에서 큰 스승을 만나는 것은 소중한 인연이다. 1995년도 ‘전주MBC 창사특집’으로 ‘한국의 풍수’를 제작한 일이 있었다. 이 프로 제작에 동행 취재하였다. 촬영과정에서 두 분의 ‘선생’을 만난다. 한 분은 장명수(전 전북대) 총장이고, 다른 한 분은 김지하 시인이다. 둘은 평생의 스승이 된다.

‘전주 풍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카메라 감독과 전북대 총장실을 찾았다. 그는 대뜸 “김 교수가 더 잘 아는데 뭐하러 찾아왔소”라며 처음 만나는 필자를 치켜세운다. 사실 그때는 30대 나이여서 전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를 통해 ‘전주 풍수’를 알았다.

“전주의 주산은 기린봉입니다. 후백제 도읍지 궁성은 기린봉을 주산으로 전주상고(현, 전주제일고)·풍남초등학교·전주고등학교 일대가 되었지요. 후백제가 망하고 고려가 들어서면서 망한 후백제의 진산인 기린봉을 그대로 쓰기에 찝찝했지요. 이후 주산의 건지산으로 바뀐 것입니다. 미래 전주 도시개발의 중심축은 기린봉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의 오목대는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의 ‘업적’입니다. 그가 전라관찰사로 전주에 있을 때 포교의 자유가 허용된 천주교가 오목대 자리에 성당을 지으려 했지요. 태조 이성계의 유적이 있던 성지이지요. 이때 기지를 발휘하여 태조 이성계를 위한 누각을 오목대에 짓고, 그 대신 현재의 전동 성당 터를 내주게 됩니다. 그때 전주성곽의 돌을 가져다 성당 건축물에 쓰게 한 것입니다.”

전북대 총장을 마치고 얼마 후 우석대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1998년 늦가을의 일이다. 전주가 배출한 위대한 소설가 최명희 선생이 지병으로 돌아가실 즈음이다. 장지 선정을 논의하느라 그의 동생 최대범 선생과 삼례에서 만났다. 점심에 반주가 한잔 한잔 거듭하여 둘 다 대취하였다. 총장실을 찾아갔다.

“음주운전이 불가하니 총장님 차 좀 내주십시오!” “천하의 김두규가 하라면 해야지요, 하하하!”(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최명희 장지 선정에 전폭적 지원을 한 분이 장 총장님이다. 당시 우석대 교정은 나무 한 그루 없어 삭막했다. 그는 용담댐 수몰 지역 노거수 소나무·팽나무·벚나무 수백 그루를 학교 교정에 이식하였다. 교정에 나무가 없을 때는 학생들이 복도에서 잡담하고 담배를 피웠다. 강의실이 소란스러웠다. 나무 그늘이 생기자 학생들이 강의실 복도를 벗어났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별명이 전북대 시절부터 ‘장녹수(張綠樹)’, ‘장조림(張造林)’인 이유를 알았다. 비보풍수란 그런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자문위원으로 장 총장이 위촉되었다. 필자도 너무 젊은 나이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우연히도 같은 ‘도시계획분과’에 소속되었다. 도시계획의 원로전문가로서 그의 자문은 현재의 세종시 탄생에 크게 기여한다. 필자는 그때 ‘도시계획’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는 단순한 도시계획전문가 아닌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철학자였다. 진정한 풍수학자였다.

가끔 상상한다. ‘그가 전북도지사를 하였더라면 전북의 운명이 달라졌을 터인데...’

지난 23일 별세한 ‘전북, 아니 한국의 비트루비우스’ 장명수 총장님을 추모하며.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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